며칠 전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는 소속 가수의 새 앨범 음원을 인터넷에 무료로 배포하며 이렇게 말했다. “음악은 팔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공유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사 댓글들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일제히 배부른 소리라는 평이 쏟아졌다. 음악이든 그 무엇이든 일단 배를 굶지 않아야 지속 가능한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창작품을 파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었다. 돈푼깨나 만지는 국내 굴지의 기획사에서 할 소리가 아니라는 것.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내 주변 풍경만 봐도 그렇다. 신산하기 짝이 없다. 장편영화를 두편이나 만들었지만 제작비도 못 건진 모 독립영화 감독은 먹고살 길도 막막하고 제작비도 마련해야겠다며 거제 조선소로 일하러 떠났다. 또 요즘 부쩍 몸이 아파 아르바이트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 감독은 간에 좋다는 조개 사먹을 돈도 없어 주변 사람들 속을 쓰리게 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영화 일이 막막한 나머지 게 눈 감추듯 아예 실종된 감독들도 수두룩하다. 자고 일어나면 1천만명 돌파 영화들이 춤을 추고, 한국영화 점유율이 82.9%까지 되는 세상이지만 그렇게 영화판 딴따라들, 특히 독립영화계 사정은 해 뜰 기미 없는 쥐구멍 풍경이다. 나 역시 지갑 볼 낯이 없을 정도로 입에서 단내가 서걱거린다. 팔고 싶어도 자기 창작품을 팔 수 없는 사람들에게 “창작품은 팔기 위해 만드는 게 아니다”라는 소리는 그렇듯 잔인한 말풍선이 될 수 있다. 배를 굶지 않아야 뭘 창작하고 뭘 공유할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아니 오히려 저 살풍경한 현실 때문에라도 난 양현석 대표의 말을 지지한다. 설령 떡밥용으로 투척한 입바른 소리라고 해도, 저 문장을 단순히 배부른 갑부의 낭만쯤으로 치부하는 것이야말로 문화를 영원히 ‘시장’의 종속변수로 붙잡아놓는 우를 범할 수 있겠다. 그의 진심이야 내 알 바 아니지만, 저 주장 자체는 틀린 게 아니니까. 당연하게도, 시장으로 환원하지 않는 문화는 존재해야 한다. 양 대표의 말대로 “함께 공유하기 위해 만드는” 문화들이 있다. 돈이 되지 않는 걸 만든다며 이명박 정부하에서 온갖 홀대와 지탄을 받았던 그런 문화들이 있다. 독립영화가 그렇고, 인디음악이 그렇고, 연극판이 그렇고, 도처의 낮은 곳에서 묵묵히 노동을 하는 예술노동자들이 그렇다. 비록 시장으로 환원되지 않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 활동들, 그렇게 팔딱거리는 노동 가치들 말이다.
고 최고은 작가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씨의 비통한 죽음 이후 우린 분노와 각성의 말들을 쌓아올려 ‘예술인복지법’을 만들어냈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이 법도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 팔리지 않는 문화도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그 목소리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융성론’을 펼치고, 문화부 장관 후보자가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문화노선을 목청 높여 비판하는 형국이다.
그 약속의 말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공유하는 문화적 삶,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함께 지키자던 그 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