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평론가, 이재용 감독, 이화정 기자(왼쪽부터).
지난 3월1일 CGV대학로에서 열린 시네마톡 현장. 상영이 끝나고 극장 안에 조명이 켜졌지만 관객 대부분은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들 뭔가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충분히 예견된 반응이었다. 이재용 감독의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이하 <뒷담화>)는 보고 나면 감독의 변이 더 궁금해지는 종류의 영화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첫눈에 반한 여인(정은채)과 밀회를 즐기기 위해 촬영현장에 가지 않고 통신장비를 이용하여 원격으로 영화를 찍는 감독(하정우)에 대한 영화를 원격으로 찍는 감독(이재용)에 대한 영화.’ 보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단편영화의 메이킹 필름의 메이킹 필름’이다. 이재용 감독은 2012년 한 휴대전화 회사의 프로모션 광고용 단편영화 <10분 만에 사랑에 빠지는 방법>에 그 작품을 원격으로 촬 영하는 감독 자신을 등장시켜 허구의 층위를 한 꺼풀 더 덧씌웠다.
‘하지만 도대체 왜?’ 시네마톡 내내 객석 위를 두둥실 떠다녔던 물음표들은 대부분 이 질문의 끝에 걸려 있었다. 관객과 사회를 본 이화정 기자, 김영진 평론가 모두 말을 아끼고, 길게 속내를 털어놓는 이재용 감독의 말을 경청했다. “요즘은 영화를 준비할 때도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해결한다. 모든 작업을 발로 뛰지 않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한다. 그러다 불현듯 컴퓨터 앞에 앉아 영화를 찍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직접 해보기로 결정했다. 내용보다는 형식이 먼저 떠오른 거다.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내 20대를 가득 채웠던 질문들, ‘영화는 무엇이고, 허구와 사실은 무엇일까’ 같은 의문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궁리해보았다.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뒷담화>에서 감독이 없는 현장은 한마디로 엉망이다. 배우들은 셋만 모여도 감독의 험담을 하기에 바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스탭들은 우왕좌왕이다. 거기에 촬영현장으로 놀러온 선배 감독 이준익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참견을 일삼고, ‘우리 예쁜’ 김옥빈은 자기 분량을 어린 후배에게 주었다고 토라졌다. 이 모든 통제불능 상황에서 모니터 속에 비친 감독의 얼굴은 시시각각 초췌해진다. “편집된 분량들에는 더 심한 뒷담화도 많았다. 내가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난 사람들도 많았고. 하지만 그 난리통에서도 어떻게 제 스스로 끝까지 굴러가긴 하더라.”(이재용 감독)
어쨌거나 <뒷담화>는 “‘낯선 영화’가 5%도 안되는 이 시대”에 꽤 과감한 시도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김영진 평론가는 현재 영화계의 전반적인 경향과 그 속에서 이 작품이 갖는 의미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영화 교과서를 보면 그런 얘기가 있다. 자발성, 즉흥성, 누벨바그 등…. 이런 말들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이러한 정신들을 촬영을 통해 실제로 구현하기가 가장 수월한 기술적 환경이 갖춰진 시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요즘 나오는 작품들은 어느 때보다 획일적이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이번 영화는 시네마톡 사회를 맡은 이화정 기자의 스크린 데뷔작(?)이었다. 본인 역할로 잠깐 출연한 이화정 기자는 소감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영화는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걸 몸소 체험했다.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다들 감독 뒷담화를 정말 엄청나게 하더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