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된 아이 방을 창고가 아닌 방으로는 만들어줘야겠다 싶어 벽장부터 비우기로 했다. 문제는 이것이 엄청난 ‘도미노 효과’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꺼내 분류해서 넣을 곳을 보니 그곳에는 다른 짐뭉치가 있고 그 뭉치를 정리해 옮길 곳을 보니 그쪽도 사정은 간단치가 않고…. 으아악. 몽땅 쓸어버리는 게 나을 뻔했다고 여기며 집 한구석에 쌓아놓고는 이번 생애 저것들을 다 정리할 수 있으려나 노려보다가 가자미눈이 되어 애 입학식에 참석했다. 담임선생님 얼굴? 늦게 가서 잘 모르겠다.
전직 대통령께서는 잡념없이 바쁘게 살면 건강에 좋다는 ‘말씀’을 남기셨는데(그분이 바쁘게 산 덕에 많은 걸 잃은 분들이 들으면 건강까지 나빠질 지경이겠다) 몇날 며칠 잡념없이 바쁘게 집을 뒤집은 결과 허리는 욱신대고 팔다리는 후들거린다. 살림의 여왕들이 보면 코웃음칠 수준이지만 일머리 없는 나로서는 이렇게 수족이 고생한다.
새 대통령도 일머리가 부족하신 것 같다. 새봄맞이 ‘인사 도미노’에 너무 진을 빼신다.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내세운 것치고 참으로 답답하다. 당장 임명장 주거나 일 시켜도 될 자리는 방기하고 국회의 ‘정부조직법 처리 지연’ 탓만 하며 “비상 국정운영”을 들먹이는 것은 완벽주의의 폐단일까 몽니일까 아니면 ‘잡념’ 탓일까. 변화될 부처에서 일하는 한 친구는 요새 인터넷 서핑에 매진하며 괜찮은 혼수가구(십수년 전에 결혼한 니가 왜), 주꾸미 맛있게 하는 집(이건 도움됐다) 따위를 뒤지는 것으로 세월을 보낸다.
국방장관 후보자는 비록 예편한 신분이긴 하나 천안함 침몰사건 다음날 골프를 치고 순직장병 애도기간에도 골프를 쳤다. 연평도 포격사건 다음날에는 일본으로 온천관광을 다녀왔다. 보통 사람들도 텔레비전 속보에서 눈을 떼지 못할 때였다. 그에 앞서 현직(1군사령관) 시절에는 “군대 내 자살은 개인문제”라는 인터뷰를 했다. 자신이 책임지던 동부전선 최전방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뒤로 범정부적으로 병영문화 전반을 심각하게 진단하고 개선책을 찾을 때였다. 놀러다닌 것보다 더 개념없는 인식의 일단이다. 대통령이 내보일 강단과 결기는 싸고돌 사람과 내쳐야 할 사람을 가르는 일에 먼저 쓰여야 한다. 그게 일의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