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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티켓 파워를 주목하라
송경원 2013-03-12

1천만 관객을 넘어선 <7번방의 선물>을 통해 본 관객층의 변화와 한국영화시장 분석

1천만 관객. 숫자가 전부는 아니라지만 달성하는 순간 하나의 의미가 된다. 지난 2월23일 <7번방의 선물>이 한국영화 사상 8번째 1천만 영화로 기록됐다. 27일 현재 누적관객수는 1060만명을 넘어 역대 한국영화 관객 순위 7위(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로 올라섰으며 최근 추이로 볼 때 기록은 계속 경신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신세계> 개봉과 함께 상영관이 579개까지 줄어들었지만 일일관객수는 여전히 14만명가량을 유지하고 있으며 덕분에 좌석점유율은 다시 오르고 있다. 말하자면 이미 1천만명이나 영화를 봤음에도 관객은 여전히 <7번방의 선물>을 ‘골라’보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가 1천만 고지를 달성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블록버스터가 아닌 새로운 1천만 영화의 등장

한편의 1천만 영화 주위에는 필연적으로 유사한 영화들이 뒤따르기 마련이고 1천만 혹은 그에 준하는 흥행이 그같은 흐름을 벗어나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리는 없다. 앞서 1천만 관객을 먼저 달성한 7편의 영화(개봉시기순으로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 <도둑들> <광해>)들 역시 때로는 유행의 시작을 알렸고, 때로는 장르의 정점을 찍고 쇠퇴를 고하기도 하는 등 중요한 분기마다 일종의 상징이 되어왔다(적어도 그렇다고 믿어져왔다). 당연히 올해 첫 번째 1천만 영화 <7번방의 선물>을 둘러싼 시선에도 그와 같은 종류의 기대가 묻어 있다.

<7번방의 선물>이 역대 1천만 영화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애초에 큰 규모의 영화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순제작비 35억원에 마케팅 23억원, 총제작비 60억원 남짓의 예산은 최근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10억원 미만 영화 제외) 46억8천만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중간 규모의 영화에 해당한다. 역대 1천만 영화들이 대부분 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블록버스터였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지난해 독과점 논란이 있었던 <광해>와 달리 꾸준한 관객의 지지를 받으며 높은 객석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최고 좌석점유율 82.4%).

또한 전쟁, 사극, SF, 재난 등을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영화들이 대부분이었던 기존 1천만 영화들과 달리 휴먼코미디라는 다소 협소한 장르의 영화라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대개 1천만이라는 수치는 1년에 한두번 영화를 보러오는 숨은 관객층까지 흡수해야 달성 가능하다는 것이 통설이며 이것이야말로 블록버스터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다. 즉 영화관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규모가 큰 영화들이 넓은 관객층을 흡수하기 유리하다는 논리였다. 이를 두고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김보연 정책센터장은 “그간의 대세는 액션 블록버스터와 같은 규모있는 영화들이었고 전체적으로 연령대도 높아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2012년 상반기에도 강한 영화들이 대세였다. 하지만 하반기에는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는 가족영화가 떠오르고 있다”고 평했다. 블록버스터=흥행이라는 통설이 깨진 지는 이미 오래지만 적어도 1천만 영화, 아니 흥행 순위 10위권 안의 영화들에 한해서만큼은 일정 부분 유효한 공식이었다. 그러나 2012년 흥행 10위권의 영화들을 살펴보면 소위 블록버스터에 해당하지 않는 평균 규모의 영화들이 절반이 넘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2012년 한국영화 흥행 순위 10위를 살펴보면 좀더 뚜렷해진다. 요컨대 이제 한국영화 흥행의 추이는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관객에 대한 이해의 문제로 보인다.

<7번방의 선물>

그때 그 40대가 움직인다

최근 한국영화들에서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는 30, 40대 관객층을 겨냥한 영화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2012년 상반기 흥행한 영화들을 살펴보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부러진 화살> <건축학개론>까지 복고 혹은 묵직한 사회비판을 담은 영화들이 강세였고, 2012년 하반기부터 <7번방의 선물>로 대표되는 소위 휴먼드라마들이 기대 이상의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양상은 다소 달라졌지만 30대 이상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7번방의 선물>의 1천만 달성을 두고 각개각층에서 나오는 목소리들 또한 공통적으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7번방의 선물>을 제작한 (주)화인웍스의 김민국 이사는 <7번방의 선물>이 “첫주에 170만명이 든 이후 거의 일일관객수가 떨어진 적이 없는 드문 영화”라고 밝히며 그 원동력을 꾸준히 찾아오는 30, 40대 관객에게서 찾았다. “30, 40대 관객이 60대 부모님과 함께 오는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특징은 다른 영화에 비해 오전 시간대의 관객이 많다는 점이다. 조조 관객 좌석점유율이 60%까지 나오기도 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30, 40대 여성 관객이다”라며 30, 40대 관객층의 영향력을 진단했다.

이 밖에도 영화예매사이트 맥스무비가 지난 2월1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0대 관객비율이 25.8%로 20.1%의 20대 관객을 앞섰다고 밝혔다. 맥스무비의 김형호 실장은 “40대 관객은 영화를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구매하기 때문에 실질 구매력이 크다”며 40대 관객의 성장이 최근 한국영화의 성장세와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롯데시네마에서 <7번방의 선물>을 관람한 관객층 조사에서도 30대가 24.8%, 40대가 25%로 이들이 흥행을 이끈 주요 관객층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전에는 20, 30대 관객이 주도적으로 시장을 형성해나갔다면 최근에는 가족의 중심인 40대 관객이 10대부터 60대까지 다른 관객층까지 끌고 들어오는 모양새다. 영화 관람이 익숙한 세대라 극장 관람에 대한 장벽도 예전에 비해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쉽고 간편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멀티플렉스라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어 가파른 상승세를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20대 관객의 절대 수가 줄어든 건 아니다. 그보다는 30, 40대 관객의 이탈이 적어졌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새로운 문화 매체와 다양한 창구를 접하며 자란 10, 20대들이 게임, 공연, IPTV 등 다양한 통로로 문화생활을 즐기는 데 반해 상대적으로 극장 관람이 가장 익숙한 문화생활이었던 30대 이상의 세대들이 자연스럽게 영화관을 자주 찾는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40대가 영화 이외의 여가를 즐기지 않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현재 40살 전후 연령층은 2차 베이비부머(1968~74년생) 세대로 전체 인구 가운데 12.4%에 이르며 이들은 최근 급격히 성장한 아웃도어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복고 성향의 대중문화 상품, 이를테면 뮤지컬, 영화, 음악시장에서도 주요 고객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발행한 ‘2013년 소매유통업 전망보고서’에서는 이른바 397세대(30대, 90년대 학번, 70년대생)를 중심으로 최근 급격히 증가한 1인 가구, 마지막으로 가족 중심의 소비를 하는 40대가 소비시장의 큰 축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를 영화시장에 국한해 분석해보면 20대 관객의 새로운 유입은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 별 차이가 없지만, 그때의 20, 30대는 30, 40대 관객이 되더라도 영화를 멀리하지 않은 결과로 해석 가능하다. 결국 이는 한국영화시장의 전체적인 성장 근거가 되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7번방의 선물>의 흥행에는 이미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전조들이 깔려 있었던 셈이다.

<박수건달>

<베를린>

전체 관람가의 가족영화 전성시대?

하지만 이를 두고 쉽게 가족영화 혹은 휴먼드라마의 강세로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7번방의 선물>은 30, 40대가 주 관객층이고 오전 시간대에도 높은 좌석점유율을 보였으며 이들이 나머지 가족들까지 유인해오는 효과가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를 ‘가족영화’의 범주 안에서 정리해버리는 건 성급한 판단으로 보인다. (주)화인웍스의 김민국 이사 역시 “가장 위험한 분석 중 하나가 작품 기획 시 무작정 대세에 따라서 기획하는 것이다. 가족영화는 결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애초에 기획 단계의 목표도 아니었다. 차라리 휴먼드라마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10년간 꾸준히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영화들을 만들어왔을 뿐이다”라며 가족영화 대세론에 우려를 표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가족영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우리의 현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원래 가족영화란 가족이 함께 보러가는 영화, 예를 들면 전체 관람가의 영화 중 전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휴먼드라마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영화를 두루뭉술하게 지칭하는 용어다. 그러나 이는 할리우드에서 주로 적용하는 구분이며 실제로 국내 영화시장에서 가족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할리우드 전체 관람가 영화들이었다. 영진위 김보연 정책센터장은 이에 대해 “가족영화시장은 분명히 존재해왔지만 그간 할리우드영화에 빼앗기고 있던 상황이었다. 지난해부터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감도가 급증하면서 한국영화 중에서 그 역할을 대신할 작품들을 찾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동안 한국영화는 성인 관객을 타깃으로 한 기획영화들이 주류였으며 대상 연령층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2005년 한국영화 등급별 점유율을 보면 외화에 비해 전체 관람가 영화의 매출이 얼마나 적은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가족 중심의 관객이 늘어난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2012년 한국영화 중 전체 관람가는 3.1%인 데 반해 외국영화의 전체 관람가 비율은 22.7%로 여전히 높다. ‘가족영화’의 개념을 달리 생각해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월21일까지 개봉한 올해 한국영화 21편 중 전체 관람가 영화는 단 4편에 불과하며 공교롭게도 4편 모두 흥행성적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규모있는 상업영화인 <마이 리틀 히어로>는 앞에서 이야기한 가족영화의 개념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 참패했다. 한국영화의 경우 전체 관람가라는 꼬리표가 관객층의 확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한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7번방의 선물>이 1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그 기세를 멈추지 않는 동안 다른 영화들 역시 모두 높은 스코어를 기록 중이란 걸 알 수 있다. 670만명을 돌파한 <베를린>은 물론이고 <신세계>도 개봉 8일 만에 1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예매율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정리하자면 최근 <7번방의 선물>이 드러낸 한국영화 관객의 변화에서 중요한 지점은 ‘가족영화’라는 모호한 장르가 아니라 40대를 중심으로 한 가족 관객의 동원이란 관람 패턴과 새로운 관객층의 부상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간과하기 쉬운 사실 중 하나는 <7번방의 선물>이 15세 관람가 영화라는 점이다. 이는 결국 1천만이란 스코어를 만들어준 관객의 관람 형태가 가족 동반 관람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김민국 이사에 따르면 “15세 이상의 청소년들은 대개 가족 단위로 관람하려 하지 않는다. 가족 단위로 관람한 사람들을 보면 30, 40대 중년 관객이 50, 60대의 부모님을 모시고 온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결국 지금의 현상은 가족을 타깃으로 한 기획영화들의 성공이라기보다는 “잘된 영화들을 놓고 봤더니 결과적으로 가족 모두 보고 온 영화더라”는 쪽에 가깝다. 대한민국 국민 네 사람 중 한명꼴로 영화를 관람한 시점에서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이 시점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가족영화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상을 좁혀들어가 30, 40대 관객이 왜 <7번방의 선물>을 선택했는가 다. 30, 40대 관객층의 티켓 파워가 분명한 시점에서 이들의 취향은 대세에 직접적인 경향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최근 흥행영화들의 두 가지 상반된 경향, <베를린>으로 대표되는 ‘어렵고 강한 영화’와 <7번방의 선물>의 ‘쉽고 착한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마이 리틀 히어로>

<신세계>

몰링 소비와 멀티플렉스 그리고 영화 다양성

최근 영화시장의 흐름과 관련하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발표한 2013년 10대 소비 키워드 중 근거리 쇼핑, 쇼핑의 편의성 추구, 그리고 몰링 소비를 연결지어보면 흥미로운 추측이 가능하다(설명1 참조). 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멀티플렉스는 현재 전국 극장의 84.7%를 차지하고 있으며, 94.3%의 시장점유율로 절대적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멀티플렉스는 2000년대 초반 이미 자리를 잡았고 2006년 이후로는 오히려 꾸준히 극장 수가 줄어들었다. 말하자면 멀티플렉스의 확충이 최근 가족 단위 관객에게 특별히 어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차라리 일찌감치 조성된 환경이 10년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빛을 보는 거라고 말하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물론 순수한 극장 수입 차원에서 이는 아무 의미없는 비교다. 극장으로서는 가족 관객이 늘 존재해왔으며 다만 <7번방의 선물>과 같이 한국영화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이색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여기서 <7번방의 선물>의 흥행 요인을 몇 마디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전 연령에 유효한 쉬운 포장이 중요한 요인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몰링 소비를 기반으로 한 관객의 관람패턴,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우호, 그리고 15세 관람가임에도 웃음과 울음을 ‘쉽게’ 전달하는 영화의 기획이 빚어낸 화학작용의 결과물이 바로 <7번방의 선물>이다.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멀티플렉스, 이른바 미니플렉스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계속 감소 추세였던 스크린 수는 지난해에 이르러서야 다시 극장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이전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과거 주택가나 상가 밀집지역을 기반으로 복합문화 상권을 조성했던 멀티플렉스들은 최근 그 공략대상을 세분화하여 주거지역 곳곳에 4~5개의 작은 관을 개봉하며 잔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이같은 플랫폼은 이른바 1인 가구 시대에 적합한 양식으로 초기 멀티플렉스처럼 한 박자 빠르게 환경을 구축해나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롯데시네마 홍보팀 임성규 팀장은 “고객 수요에 맞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관객의 다양화가 결국 30, 40대 시장을 폭넓게 아우르는 경로가 될 것으로 본다”는 견해를 전했다. 멀티플렉스의 하드웨어와 한국영화가 화학작용을 일으켜 평균 규모의 휴먼코미디 장르를 1천만 영화로 탄생한 데는 거의 10년의 시간차가 있었다. 최근 확장 중인 미니플렉스들 역시 언제 어떤 장르영화들과 결합하여 의외의 현상을 이끌어낼지 모르는 일이다.

한편 비록 <7번방의 선물>이 1천만 고지를 달성하였지만 이런 방식의 휴먼드라마가 이후로도 봇물처럼 기획될지는 알 수 없다. <7번방의 선물>은 기획 단계부터 준비된 가족영화라기보다는 늘 일정 수요가 있었던 장르이기 때문이다. 김민국 이사 또한 “1천만이란 숫자는 기현상이자 신드롬이라고 본다. <7번방의 선물>이 1천만을 찍었다고 다음에 비슷한 영화가 잘되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오히려 이를 계기로 “중소 규모의 제작사들이 여유를 가지고 재투자하여 다양한 영화들을 기획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시점에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은 최근 영화시장에 새로운 실험과 기획을 하는 영화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베를린>처럼 전통적으로 강세였던 액션 블록버스터든, <7번방의 선물>처럼 모든 관객층을 공략하려는 쉽고 직관적인 영화든 둘 다 멀티플렉스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최대 다수의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제작된 것은 매한가지다. 여기서 또 하나의 지표를 끄집어내보자. 2007년에 97편이 제작된 다양성 영화들이 약 400만 관객을 동원했던 데 비해 2012년에는 365편으로 제작편수가 늘었음에도 관객수는 오히려 340만명으로 감소했다. 앞서 2013 소비 트렌드에서 언급한 ‘근거리 쇼핑과 쇼핑의 편의성 추구’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건 이 때문이다. 영화 관람이 보고 싶은 영화를 수고롭게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편리한 쇼핑의 일환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생각해볼 부분이다. 물론 시장의 확대와 새로운 관객층의 대두로 인해 그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30, 40대 관객의 취향을 반영한 영화가 다양한 방향에서 기획되는 것은 고무적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상영 중심으로 재편되는 소비 패턴에 대한 일말의 우려를 지울 수 없는 건 <지구를 지켜라!> 같은 독특한 장르영화를 멀티플렉스에서 만나본 지가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다.

주부를 잡아라

관객층 다변화에 따른 멀티플렉스의 전략

관객층의 다변화에 극장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가장 기본은 거점지와 시간대에 최적화된 프로그래밍이다. CJ CGV 홍보팀 김대희 과장은 “거점지에 따라 목동, 강변같이 주거단지 근처에는 애니메이션을 더 많이 프로그래밍하고, 주부들이 몰리는 무비꼴라쥬관에는 특별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시네마 홍보팀 임성규 팀장도 “공략 시간대가 넓어졌다. 이전에는 가장 약했던 2, 3회차 점유율이 많이 상승했다. 그 시간대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CJ CGV에서는 극장을 중년 주부 관객의 문화 및 여가 활동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 두드러진다. CJ ONE 회원 중에서도 특별히 45살 이상 관객을 위한 맞춤 서비스 ‘노블레스 프로그램’, 목동 인근의 40, 50대 여성 관객을 위한 ‘브런치 시네마’와 ‘아트톡’ 프로그램, 상암 무비꼴라쥬를 자주 찾는 주부 관객을 위한 ‘10시엔 영화’ 기획전, 뷰티 강좌와 연동한 비정기 프로그램 ‘뷰티시네마’ 등 중년 주부 관객을 상대로 지역과 시간에 따라 세분화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런 다양한 시도를 통해 “30, 40대가 된 X세대의 중년층의 지적 갈증,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CGV 김대희 과장은 보고 있다. “현재 30, 40대가 부모 세대가 되면서 부모와 자녀가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전보다 활발해짐에 따라 극장도 이에 발맞춰 움직여야 한다”는 롯데시네마 임성규 팀장의 지적도 다르지 않다. 이에 따라 롯데시네마에서도 일산, 평촌 등 주거지역 지점들에서 ‘엄마랑 아기랑’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2, 3회차를 활용해 영화관을 찾기 힘든 어린 주부들이 아이를 데려와 함께 떠들면서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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