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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의 아주 사적인 클래식] 시네마천국으로 떠난 친구에게

<잔 다르크의 열정> La Passion de Jeanne d’Arc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1928년

<잔 다르크의 열정>

<잔 다르크의 열정>

날짜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확인해보니 2010년 봄이다. 그날도 나는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1000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고양시에 자리한 대곡역을 지날 즈음, 싱가포르에 있는 류상욱의 전화를 받았다. 그가 암에 걸렸다는 비보를 접하고 며칠 뒤였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울기 시작했고, 오히려 그가 눈물을 거두라며 위로했다. 아마도 그때부터일 것이다. 나는 그의 얼굴보다 목소리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 엄격한 얼굴과 달리 경쾌한 편인 그의 목소리는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순간에도 눌리지 않았다. 지난해 말, 류상욱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상에서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겠다는 결정. 나는 한참 운 뒤에야 그의 얼굴을 보러 오피스텔에 들어가곤 했다. 신기한 것은 그의 눈이 예전보다 더 맑아졌다는 사실이다. 그리도 빨리 그를 데려가려는 하늘이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건지 모른다. 나와 지인들은 그의 옆에서 변함없이 수다를 떨었고, 나는 고개를 돌린 때에도 그가 지그시 바라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2월1일, 나는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그는 흐린 목소리를 겨우 낼 뿐 이미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갑작스레 그가 꺼낸 말을 나는 잊지 못한다. 지금 찍고 있는 영화의 제목이 무엇이냐고, 그리고 감독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철없던 시절, 나는 영화와 살고 죽는 삶을 동경했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것이 행복인지, 잠시 답을 구하려 애썼다. 나의 부질없는 노력은 그의 부인 박미희의 말을 듣고 멈추었다. 그녀는 “이제 영화 너무 보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2월16일 자정, 막 끝낸 원고를 보내다 전화기를 들었다. 2시간 전에 받은 문자, 그가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다는 전갈. 빈소에는 내가 좋아하는, 활짝 웃고 있는 류상욱의 사진이 놓였다. 그 웃음에 얼이 친 걸까. 나는 분향과 헌화도 하지 않은 채 인사를 마쳤다. 허둥대는 내 모습에 그는 또 웃었지 싶다.

지난해 12월에 나는 그를 인터뷰하기로 했고, 조용한 방에 앉아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억에 남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잔 다르크의 열정> <엄마와 창녀> <만다라>라고 대답했다. 우연인지 네편 모두 죽음과 연결된 작품이다. 그중 <잔 다르크의 열정>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그 말을 하는 상황의 그에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제목의 ‘Passion’은 수난과 열정을 의미한다. 잔 다르크는 ‘죽음, 고통, 멸시’의 수난을 겪으면서 동시에 ‘삶, 신념, 투쟁’의 열정을 간직한 인물이다. 오늘 다시 영화를 보며 <잔 다르크의 수난>보다 <잔 다르크의 열정>이 더 적절한 제목이 아닐까 생각했다. 잔 다르크라는 인물의 감동은 수난사가 아닌 영혼의 열정적인 투쟁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류상욱의 마지막 나날도 다르지 않다. 때이른 죽음 앞에서 그는 ‘산다는 것의 가치’를 내게 일러주었다. 나는 언제나 죽음을 낯설고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고 가능하면 회피하려 했다. 류상욱은 삶에서 싸우는 것으로 죽음에 저항했다. 이제 그가 그리울 때마다 삶의 끈을 불끈 동여매리라. 참, 그의 뜻에 따라 조의금은 서울아트시네마에 기부했다. 그는 정말 끝까지 영화를 사랑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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