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카메라가 클로즈업을 할 때, 감독이 “여길 봐”라는 듯 내 얼굴을 잡아 돌리는 느낌을 받곤 한다. 순간 감독의 무의식이 작용한다는 느낌 혹은 그(녀)가 내 무의식을 건드리고 싶어 한다는 인상 말이다. 이내 묻고 싶어진다. 저 표정인가요? 저 몸짓인가요? 영화 속 그런 클로즈업의 순간을 소설 속에서 찾으라면 아주 긴 묘사가 등장할 때가 아닐까. 마치 그 공간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이 운명지워진 사람처럼 작가가 물건 하나하나를 그려갈 때, 무엇을 보라는 것인지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걸 보라고요? 저걸 보라고요? 왜죠?
“처음 갔이 잤을 때 그는 내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못 움직이게 했다”라고 시작하는 <나인 하프 위크>에서 정말 인상적인 것은 사실 ‘그’의 공간을 묘사하는 그녀의 집요함이었다. 영화를 보고 남은 인상이 킴 베이싱어와 미키 루크가 서로를 알아가는 9와 1/2주일간의 정사 신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알 수 없었던 두 사람의 ‘거리’가 책 속 묘사를 통해 벽처럼 솟아오른다. 그녀는 그를 모른다. “젤리 단지의 뚜껑이었음직한 용기 속에 단순한 금색 커프링크 한쌍. 좁은 금색 타이핀, 가운데 가는 금색 줄이 길게 들어간 진청색 에나멜 커프링크가 담겨 있다. 누군가 그에게 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틀림없이 선물이고, 그것도 멋진 선물이다. (중략) 가장 큰 서랍은 걸려서 몇번이고 잡아당겨야 한다. 마침내 힘껏 당겨 서랍을 여니 놀라운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천짝은 될 법한 똑같이 생긴 긴 검은 양말이 빼곡히 들어 있다. 나는 생각한다. 이 남자의 양말은 내가 알던 남자들 모두의 양말을 합친 것보다도 많겠어. 그는 뭐가 겁나는 걸까?” 옷의 종류를 살피고, 그 옷에 그가 들려준 생활을 대입한다. 관계가 시작될 때, 말과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나만이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알고 싶을 때 이루어지는 엿보기. 그의 곁을 지키는 물건들 사이로 사라지고자 하는 욕망(그가 알지 못하게 모든 것을 알아내고자 하는, 숨바꼭질하듯 숨죽여 물건 사이로 파고들고자 하는 욕망)을 느끼는 동시에 그가 다시 나를 찾아내지 못할까 두려워져 다시 인기척을 내고 싶어지는 마음 같은 것. <나인 하프 위크>에서는 대화라고 부를 만한 게 침대 밖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관계를 가늠하고 상대를 알아낼 수 있는 실마리는 그를 둘러싼 물건들밖에 없는지도. 묘사는 그렇게 엿보는 인물을 사물들 사이로 숨게 하고 읽는 사람을 같이 숨죽이게 한다.
출판사 그책에서 인간의 에로티시즘과 욕망을 말하는 문학 시리즈 에디션 ‘D’를 펴냈다. <데미지> <크래시> <나인 하프 위크> <비터문> <부영사>가 그 책들. 영화로 먼저 본 책들이 많으니 이미 머릿속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듣는 이야기 같다. 글로 읽으니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