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남편도 아이도 없다. 글을 쓰는 여자 친구들이 아이를 낳은 뒤 입을 꾹 다물고 술과 담배와 놀이의 가장 먼 곳으로 가 숨은 다음 몇달이 지나 그 어떤 마감 때도 지은 적이 없는 소외된 얼굴을 하고 눈앞에 등장할 때마다 보는 쪽도 몹시 괴롭다고 생각하는 게 전부다. 게다가 방 안에 아이가 있으면 자동적으로 ‘방 안의 코끼리’를 연상하는데, 그 표현의 뜻과 정반대로 아이 이야기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사실,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갓난아이는 심하게 울어댄다. 시인 김경주는 아내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기까지의 40주를 글로 써 <자고 있어, 곁이니까>라는 책으로 묶었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이를테면, 당신이 아이의 부모거나 부모인 사람들과 아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수없이 말하고 들은 바로 그 이야기다. “오늘은 처음으로 네 심장 소리를 들은 날이란다”로 시작한다는 뜻이다. 24주차 일기의 제목 ‘네가 내 삶을 변화시킬 거라 믿어’는 어떤가. 막연하고도 구체적인 희망이 꿈틀거리는 기운에 도취되는, 배가 부풀어오르는 시간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읽을수록 중독성이 생긴다. 행복의 기록인 동시에 감정기복의 기록이어서다. 22주차 일기에는 옆집에 이사 온 사람들이 데려온 개 두 마리 때문에 싸우는 내용이 실려 있다. 개가 심하게, 자주 짖는데 그 주인들은 무례할 정도로 방관하기만 한다. 결국 그는 옆집 문을 두들기고는 으름장을 놓는다. 아내에게 침묵을 사과하고(아기를 대할 때마다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가 금세 우울해지는 이 부조리한 느낌에 대해 내가 어떤 표현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이에게 세상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해주기도 한다(아가야, 우리는 어디에도 우리의 삶을 숨길 수 없을 만큼 연결되어 있지).
불안과 슬픔까지도 살뜰하게 그러모아 아이와 아내와 나누는 이 40주의 기록은 감탄스럽지만, 집에 늦게 들어감을 사과하거나 창작촌에서 지내고 있음을 알릴 때 순전히 생물학적 여자인 독자로서 화가 나기도 한다. 그래도, 아빠는 곁에서 자고 있다. 그런 따뜻함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