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5대 국정목표를 훑어보니, 유독 창(創) 자가 많은 것이 대번에 눈에 띄었다. 일자리 창출의 창, 창조경제의 창, 창의교육의 창. 한자사전을 찾아보니, 창출(創出)과 창조(創造)와 창의(創意)의 ‘창’은 비롯하다, 시작하다라는 뜻을 지녔다. 상식적으로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기존의 것을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해야만, 새로운 것이 비롯되고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창(創) 자 안에 이미 칼 도(刀) 자가 기둥처럼 세워져 있지 않은가. 베어내지 않고 피흘리지 않으면, 창출과 창조와 창의는 불가능하다. 때론 제 몸, 제 살의 환부에도 칼을 과감하게 들이댈 수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런 의지가 새 정부에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정해졌고, 대통령 취임식이 코앞이긴 하지만, 섣불리 아니라고 단정하긴 이르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이렇게 물어볼 순 있을 것 같다. 새 정부가 만약 칼을 꺼내든다면, 그 칼끝은 어디로 향할까. 무엇을 베어내야 할지 인지하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칼을 휘두른다면 어떻게 될까. 난도질을 하지 않으려면, 난장판을 만들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창(窓)이 필요하다. MB 정부의 지난 5년 동안의 ‘삽질’을 돌이켜보자. MB 정부 역시 창출과 창조와 창의를 줄기차게 외쳐댔다. 하지만 MB 정부의 창(創)은 창(窓) 없는 창(創)이었다. 무모한 독단과 끔찍한 아집이 불러온 참담한 비극을 다시 언급하고 싶진 않다. 지난해 11월8일 개최된 ‘2012 대선 미디어/문화예술/정보통신 정책토론회’에 박근혜 선거 캠프는 불참했다. “문화/예술 부문 예산을 국가 예산의 2%까지 올리겠다”와 같은 알맹이 없는 약속만 던져둔 채 말이다. 눈과 귀를 닫고 칼을 휘두르겠다는 심산이 아니라면, 출범 직후 곧장 새 정부는 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부터 주워담아야 할 것이다.
이번 호부터 편집장이 바뀌었다. 전임 편집장 선배들이 애써 터놓은 독자를 향한, 영화계를 향한 창(窓)을 조금이라도 더 넓혀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싶다. 창(窓)이 커지면, 날아드는 비판의 화살도 더 많아질 것이다. 아프겠지만, 어쩌겠는가. 잡지의 창(創)을 꾀한다면, 그게 맞는 선택이 아닐까 한다. 10년 넘게 더없는 선배로서, 가까운 동료로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 <씨네21>을 이끌어준 문석 전 편집장에게 고맙다는 말을 뒤늦게 전한다. 덧붙여, 문석 전 편집장 역시 기꺼이 <씨네21>의 열린 창(窓)을 향해 뾰족한 창(槍)을 던져주리라 믿는다. 그 역시 <씨네21>의 창(昌)을 누구보다 바라는 독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