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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중견 감독의 가면을 쓰고 데뷔하다
주성철 2013-02-26

<라스트 스탠드>, 김지운 감독 특유의 색깔을 보여준 B급 하드코어 서부극

<라스트 스탠드>는 김지운의 영화다. 이 말이 중요하다. ‘김지운의 할리우드 데뷔작’이라는 느낌보다 ‘김지운의 미국 로케이션 영화’라는 표현이 더 어울려 보인다. 지금껏 할리우드로 건너간 홍콩 감독들을 떠올려보자. 오우삼의 <하드 타겟>(1993), 임영동의 <맥시멈 리스크>(1996), 서극의 <더블 팀>(1997)은 그들이 아닌 장 클로드 반담의 영화였고(꼭 부정적인 의미로 하는 얘기는 아니다), 황지강의 <빅 히트>(1998)와 진가신의 <러브 레터>(1999)는 그 누구의 영화도 아니었다(이 역시 꼭 부정적인 의미만 담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탄의 인형4: 처키의 신부>(1998)가 이전과는 스스로 전혀 다른 스타일을 시도했음에도 우인태의 영화라 할 수 있었다. 할리우드가 아닌 뤽 베송에 의해 스카우트된 원규의 <트랜스포터>(2002)도 만족 시도였던 반면, 정소동과 스티븐 시걸이 한참 트렌드가 지나고 난 다음에야 만난 <벨리 오브 비스트>(2003)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보여줄 게 너무 많아서 의욕이 넘치고 야심으로 불타는 감독들이었다. 그래서 과거 홍콩 시절 자신의 영화에서 익숙하게 연출했던 장면들을 그대로 써먹는 장면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들에게는 ‘나를 왜 할리우드로 데려왔을까’ 하는 그 이유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반면 <라스트 스탠드>는 김지운 감독이 늘 그랬던 것처럼, 그 이유보다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는 목적이 중요했던 영화다. 그 이유를 먼저 따졌다면 <장화, 홍련>(2003)을 끝내고(고어 버빈스키가 나카다 히데오의 <링>을 리메이크하고, 또 그 나카다 히데오가 할리우드로 건너가 <링2>를 만들던 그즈음) 할리우드에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도 그는 할리우드로부터 몇편의 호러영화 연출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말하자면 <라스트 스탠드>는 김지운이 원래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던 감독인 양 가면놀이하듯 만든 할리우드영화다. 그래서 언제나 장르를 옮겨 다녔던, 그러면서 스스로 연출의 쾌감을 만끽했던 그가 새로이 내놓은 하드코어 B급 서부극이랄까.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김지운의 세계에서 움직인다

<라스트 스탠드>에서 탈옥에 성공한 마약왕 가브리엘 코르테즈(에두아르도 노리에가)는 시속 450km의 튜닝 슈퍼카 콜벳 ZR1을 타고 미국 국경을 넘으려 한다. FBI 수사팀을 이끄는 존 베니스터(포레스트 휘태커)의 예상을 깨고 가브리엘은 애리조나주의 서머튼으로 향하고, 연중 별다른 사건사고도 없는 서머튼의 보안관 레이 오웬스(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왕년의 실력을 발휘해 그를 막으려 한다. 여기서 김지운의 슈워제네거는 오우삼과 서극과 임영동의 반담과 다르다. 어쨌건 그들과 함께할 때의 반담이 경력의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해도 전성기의 끝물 정도는 됐던 반면, 지금의 슈워제네거는 영화에서 주변 사람들이 얘기하듯 실제로 그저 ‘노인네’에 불과하다. 주지사에서 마을 보안관으로 좌천(?)된 느낌 그대로, 힘내어 말하는 것조차 버거워 보일 정도로 쇠락했다. 198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던 ‘하드 보디’ 터미네이터가 “어머 근육 좀 봐, 운동 좀 하셨나봐요?”라는 얘기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반담이 감독의 연출과 무관하게 그저 자신의 개인기에 집중했다면, 나쁘게 말해 혼자서 따로 놀았다면 슈워제네거는 철저히 김지운의 세계에서 움직인다. 이제껏 그가 한번도 보여준 적 없는 세월의 풍파가 그 주름에 담겼다. 한번 정도 농담처럼 “I’ll be back”이라는 대사를 내뱉을 법도 한데(솔직히 좀 기대하긴 했다) 그마저도 없다. 함께 동시대를 풍미했던 또 다른 하드 보디 실베스터 스탤론이 제임스 맨골드의 <캅 랜드>(1997)에서 보여준 세월의 흔적보다 더하다. <캅 랜드>의 스탤론 역시 뉴저지주의 조용한 마을 개리슨의 껍데기뿐인 보안관이었다. 게다가 레이에게는 가족도 없다. 어쩌면 실제 가정부와의 혼외정사로 이혼에 이른 그의 개인사가 반영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영화에는 이혼 혹은 사별한 것으로 보이는 아내의 존재, 혹은 멀리 떨어져 살고 있을지도 모를 자식들의 존재도 지워져 있다.

마치 <그랜 토리노>(2008)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집 마당 의자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애처롭다. 과거 그는 잘나가는 LA 마약반 경찰이었으나, 코카인 밀매 현장을 급습했다가 7명의 동료를 잃고 혼자만 살아남은 경험도 있다. 한참 어린 후배 제리(자크 길포드)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서머튼을 떠나 LA로 가고 싶다고 얘기할 때도 그는 별다른 말이 없다. 사실 아무런 실력도 없고 사고뭉치인 제리를 향해 잔소리를 할 수도 있을 텐데, 마치 세상사를 달관한 듯한 얼굴로 바라만 본다. “I’ll be back” 같은 대사는 없지만 굳이 이전의 그를 환기시키는 장면이라면, 집안에 온갖 무기를 갖추고 살아가는 루이스 딩컴(조니 녹스빌)을 향해 레이가 ‘크루세이드’(십자군) 운운하는 얘기다. 레이는 전쟁광처럼 고대 투구까지 쓰고 전투에 임하는 루이스를 향해 한심하다는 말투로 “너 지금 십자군 전쟁 나가냐?”고 말한다. 과거 <크루세이드>는 ‘<코난>과 <브레이브 하트>를 합쳐놓은 최고의 시나리오’라는 극찬을 받으며, <토탈 리콜>(1990)을 함께했던 폴 버호벤과 슈워제네거가 재회할 것이란 기대를 모았던 대작이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촬영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됐고 여전히 이십세기 폭스사의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중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슈워제네거에게 가장 아쉬운 ‘꿈의 프로젝트’일 것이다. 하지만 <크루세이드>가 다시 제작된다 해도 그는 이제 나이 때문에 주인공을 맡기란 힘들지 않을까.

<하이 눈> <리오 브라보>를 닮았다

슈워제네거의 쇠약함을 강조하기 위한 방편일까. 혹은 <악마를 보았다>(2011)의 여진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라스트 스탠드>는 제법 하드코어한 향기를 풍긴다. 슈워제네거가 느려터진 것과 비례하게 유난히 신체훼손 장면이 많다. ‘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슈워제네거의 실제 살갗과 터미네이터의 금속 질감을 동일시하는 그의 팬들이라면 굉장히 신선하다. 옥상에서 ‘논개’처럼 적을 껴안고 바닥으로 떨어져서는 한참이나 일어나지 못한다. 총을 맞아 피를 흘리고 허벅지에 단검이 찔린다. 그는 이제 그것을 튕기거나 막아내지 못한다. 말하자면 그의 존재를 통해 <라스트 스탠드>는 하드코어가 가미된 독특한 B급 서부극, 혹은 기존 할리우드 중견 감독의 귀여운 소품 같은 느낌의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떠오르는 영화들은 많다. 먼저 서부의 작은 마을 헤이드리빌에서 보스가 탄 기차가 12시 정오에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는 무법자와의 사투를 그린 프레드 진네만의 <하이 눈>(1952), 텍사스 변방의 리오 브라보를 지나는 미 연방재판소 집행관에게 악당을 넘기는 내용인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1959)가 직접적으로 떠오 른다. <라스트 스탠드>가 하루 동안의 실시간으로 이뤄진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하이 눈>, 악당을 탈출시키려는 수십명의 부하들과 싸운다는 점에서는 <리오 브라보>를 닮았다. 묘한 B급 정서는 샘 레이미의 <퀵 앤 데드>(1995)를 떠올리게도 한다. 어쨌건 핵심은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드라마라는 점과 한 마을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라는 점이다. <하이 눈>의 존 웨인처럼 <라스트 스탠드>의 슈워제네거 역시 조그만 마을의 별볼일 없는 보안관이지만 투철한 사명감에 불타는 남자다.

매번 장르를 옮겨 다니며 ‘종합선물세트’를 만들고자 하는 김지운의 목표는 <라스트 스탠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액션 신들은 설정부터 공간까지 매번 다른 컨셉으로 이뤄져 있다. 카체이스 무비로서 코르테스의 콜벳 ZR1과 레이의 카마로 ZL1이 고속도로가 아닌 옥수수밭에서 펼치는 체이스 신은 아기자기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며,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마을에서의 총격 신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의 귀시장 액션 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 ‘귀여운 하드코어 영화’ 같은 이 영화에 김지운식 유머도 지뢰처럼 군데군데 숨어 있다. 안전을 위해 당장 가게를 떠나야 한다는 슈워제네거의 얘기에 ‘금방 음식을 주문해서 지금 나가기는 곤란하다’며 무심한 마을 사람들, ‘할망구’라는 얘기에 화가 나서 직접 악당을 쏘아 죽이는 할머니, 적을 막기 위해 전신주를 잘라야 한다며 전기톱을 꺼내드는 조니 녹스빌의 모습이 의도적으로 삽입된 장면들이라면, 러닝타임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은근슬쩍 묻어가는 유머의 대가인 김지운식 유머도 빛난다. 구치소의 창살을 사이에 두고 불편하게 하이파이브를 하는 두 친구의 우정 어린 장면, 부상으로 업혀 실려 가는 조니 녹스빌이 쓴 투구가 바닥에 질질 끌리는 장면들은 영락없이 김지운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다.

“뭘 맡겨도 잘할 것 같은 감독”

지난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에 참석한 테렌스 창은, 김지운 감독과 클로드 소테 감독의 프렌치 누아르 <맥스 앤드 정크맨>의 리메이크를 논의 중이었다. 결국 현재까지 보류된 상태지만, 그는 김지운에 대해 “뭘 맡겨도 잘할 것 같은 감독”이라고 말했다. ‘잘할 것이 정해져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오우삼과 서극과 임영동은 주인공이 장 클로드 반담에서 다른 배우로 바뀌었다면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들고자 하는 컨셉이 너무나 명확한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에 비해 김지운은 그만의 ‘전매특허’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다지 없다. 테렌스 창의 말처럼 매번 서로 다른 장르를 성공적으로 옮겨다닌 그 준수한 변신 능력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일 테다. 주인공이 리암 니슨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로 바뀌는 급박한 상황, 말하자면 스타일뿐만 아니라 애초의 컨셉까지 바꿔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다지 흔들리지 않고 유연하게 적응한 건 놀랍다. 예산의 한계가 스크린에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것이 B급 서부극의 향기를 해하지는 않는다.

거국적인 화해라는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을 그대로 따르는(어떻게 보면 오히려 김지운의 팬들에게 가장 웃긴 장면이 될지도 모르는 라스트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에서 한번도 그런 연출을 한 적 없으니까) 그 모습이 타협으로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런 상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미 러닝타임 내내 ‘R등급 같지 않은 R등급’의 느낌으로 그만의 스타일을 꽉꽉 채워넣었기 때문이다. 개봉 당시 북미지역의 총기 사건과 겹쳐 직접 언론에 오르내리며 흥행에 직격탄을 맞은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만, <라스트 스탠드>는 반칙왕 같은 김지운의 개성을 제대로 새겨넣은 귀여운 B급 하드코어 서부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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