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3월, 내가 가장 기대하는 영화는 제주 4.3 항쟁을 다룬 오멸 감독의 <지슬>이다. 한 사회 공동체에는 가능한 많이, 더 다양한 방법으로 예술이 되어야 하는 사건들이 있다. 극단적 폭력성이 악랄한 사건일수록 다양한 예술작업이 후속되어야 한다. 예술은 ‘사건’의 가장 후미진 경계까지를 보듬으며 인간의 치유에 관여하는 숙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 항쟁’, 가장 가깝게는 ‘용산참사’ 같은 ‘사건’들은 그러므로 더 충분히 더 적극적으로 예술이 되어야 한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착각)하는 사건들에 대한 충분한 공유와 다양한 공감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과거의 사건은 너무도 흔히 현재의 사건으로 폭력적 재발을 감행하므로 더더욱 그러하다.
지슬. 제주 방언으로 ‘감자’라는 뜻의 이 영화가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가슴이 뭉클했다. 제주는 4.3의 트라우마가 현재형인 곳이다. <지슬>의 예술적 성취가 제주 사람들의 해원과 치유에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생이 떠올랐다. 제주가 고향인 <지슬>의 오멸 감독은 제주에 관한 영화들을 계속 만들어오고 있다. 역시 제주가 고향인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생은 서귀포 강정마을에서 7년째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 ‘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해 싸우고 있다.
지난 1월 마지막 주에 강정마을에 놀러갔었다. 그때 양윤모 선생을 잠깐 뵈었다. 강정마을의 ‘평화센터’에 들렀을 때 마침 오멸 감독의 다른 작품인 <뽕똘> 이야기가 한창이었는데, 며칠 전 그 영화를 다 함께 봤다며 ‘너어~무’ 재밌었다는 강정지킴이들의 환한 웃음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 가득 띤 채 양윤모 선생이 한쪽 구석에서 책을 뒤적거리고 계셨다. 그렇게 잠깐 뵙고 돌아온 며칠 뒤인 2월1일, 선생이 법정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항소심 선고일에 벌어진 일이었고,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선생은 수감되자마자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선생은 말한다. “나는 무죄입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범죄행위입니다.” 그래요, 선생님. 마을 주민들의 동의 없이, 바다 오염과 훼손에 대한 생태적 고려도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짓는 전쟁기지가 범죄행위임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어요. 그러니 단식은 제발 거두어달라고 지인들은 말렸지만 선생은 단호하게 말한다. “영화평론가는 아름다운 것을 지켜야 합니다. 구럼비는 내가 본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답기에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아름다운 것의 지속 가능성과 전쟁 대신 평화를 갈구했다는 이유로 영화평론가가 감방에 갇히는 세상이다. 이 야만을 녹일 따스한 소통의 꽃봉오리들이 어서 피어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