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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물건의 사생활
이다혜 2013-02-21

<디자인의 탄생> 페니 스파크 지음 / 안그라픽스 펴냄

영혼과 관련되었다고 믿고 싶은 것들이 사실 그 무엇보다 돈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취향이 그럴 텐데, 마치 타고난 어떤 것인 양 포장되곤 하지만 돈이 가져다주는 ‘구매 가능함’의 너른 정도가 경험의 폭을 결정짓고, 결국 취향이라는 모호한 무엇을 형성한다. <디자인의 탄생>은 18세기 중엽부터 현재까지 주요한 디자인의 특징들을 순례한다. 당연히 도판 자료가 풍부하고, 글과 이미지는 서로 호응하며 시간을 다음 페이지로 밀어낸다. 그리고 디자인이 탄생하고 변신하고 진화하는 매 순간, 자본과 생산성의 변화가 어떤 식으로 대중의 취향에 관여하는지를 꼼꼼하게 드러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편집장 미란다 프라이슬리가 패션을 무시하는 앤디 삭스에게 패션에 대해 일침을 가하던 장면을 기억하는지. 이 책은 그 한마디를 지적으로 다시 경험하게 만든다.

이 책이 디자인이라고 통칭하는 세계가 워낙 드넓다보니, 영화 세트 디자인도 도마에 오른다. 독일 태생 영국 디자이너 켄 애덤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수천개의 전구를 사용해 만든 세트를 사용했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세트가 나오기까지 꼼꼼하고 복잡하기 그지없었던 소통과정에 대한 애덤의 코멘트는 이렇다. “그것은 마치 정신 분석 상담 시간 같았다.” 재료, 기술, 유통의 발전이 제2차 세계대전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도 당연하게 지적된다. 전쟁 기간 동안 콘돔이 군인들에게 엄청나게 공급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콘돔이 유통 가능해졌다든가 하는 소소한 상식 사전 같은 지식의 나열도 있다.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앨런 레인의 펭귄 문고본 디자인에 대해서도 페이지를 할애한다. 다만 책 말미를 장식하는 도시의 브랜드화, 가상 세계, 환경과 디자인과 같은 이슈들은 이후의 책들이 폭넓은 사례를 통해 길을 만들어갈 것이다.

코코 샤넬에 할애된 4페이지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한 페이지 전체를 차지하는 마릴린 먼로 사진이다. 아마 광고 비주얼로 쓰였을 이 사진에서 먼로는, 눈을 내리깔고 한쪽 어깨를 타고내린 슬립은 무시한 채 손가락을 느슨하게 펴고 샤넬 넘버5를 가슴골에 바르고 있다. 사진 한장을 설명하는 데 수많은 언어는 그저 부족할 뿐이고, 헤어스타일, 손동작, 향수병, 표정, 메이크업… 디자인은 그 모든 요소의 선택과 배치를 은근하게 매듭지어 영원불멸의 이미지로 신화화하고, 마침내 누군가가 지갑을 여는 행위까지를 이끌어낸다. 그러니 지금 주위를 둘러보시라. 그저 좋아서 샀다고 생각한 책의 표지를, 향이 구매 결정을 내린 이유였다고 생각했던 향수병 목에 묶인 리본의 색깔을, 소재를 생각하면 약간 웃돈을 준 감이 있는 램프의 갓 디자인을. <디자인의 탄생>은 바로 당신을 둘러싼 그 모든 물건의 과거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