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차 부부 영우(윤동환)와 지영(최원정)은 특별할 것 없는 권태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출판사 사장인 영우는 소속작가(신예안)와 지속적으로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지영 역시 그런 영우를 모른 척한다.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아랍 청년 케림(놀래그 윌쉬)을 만난 지영은 그에게서 알 수 없는 인연을 느낀다. 하지만 엄격한 이슬람교도인 케림은 그녀와의 만남을 뒤로한 채 바라나시로 떠나버리고 지영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를 쫓아간다.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진 지영을 찾던 영우는 바라나시의 테러현장을 중계하던 TV 뉴스에서 그녀를 발견하고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 바라나시로 떠난다.
‘타운’ 삼부작으로 국내외에 이름을 알리며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전규환 감독의 신작 <불륜의 시대>(원제 <바라나시>)는 본격 격정멜로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장르영화의 관습에서 이 영화를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 2011년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될 당시 받았던 ‘전규환 감독 작품 중 가장 이해하기 쉽고 흥미로운 작품’이란 평이 그저 입에 발린 수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대중에게 익숙한 화법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영화다.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르다는 말이다. 원제이자 영화 속 지영이 떠나는 공간인 바라나시가 품고 있는 기묘한 분위기, 삶과 죽음이 공존하며 신성하고도 세속적인 정서가 영화 전반에 감돌고 있다.
불륜을 둘러싼 네 남녀의 인간관계를 통해 인간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이 영화의 화법은 실로 도발적이고 과감하며 솔직하다. 대개 영화에서 여기까지라고 보여주겠거니 예상되는 지점마다 꼭 한 걸음씩 더 나아가며 불륜에 얽힌 두 남녀의 속살을 바닥까지 파헤친다. 영화는 플라토닉한 사랑을 하는 지영과 육체적인 관계를 탐닉하는 영우의 불륜을 두고 도덕적인 우월을 따지진 않지만 대신 사람들이 으레 괜찮다고 생각하는 위선어린 행동 이면의 진실을 불편할 만큼 파고들어간다. 그만큼 불편하지만 영화의 끝자락에 이르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이 후련하기까지 하다.
표현 수위 역시 두번이나 심의 반려가 된 만큼 높다. 그러나 화면은 의외로 건조하고 삭막하다. 심지어 섹스를 하는 장면마저 선정적이라기보다는 불편함으로 가득 차 있다. 몇몇 노출장면들은 노출을 전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동선의 일부에 불과해 보인다. 표현 수위를 두고 말이 많지만 이 영화의 진정 적나라한 지점은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관계의 위선을 까발리는 솔직한 목소리에 있다. 남녀관계에 집중하고 있지만 멜로의 장르적 문법이 아니라 관계라는 정서만을 빌려온 뒤 자신만의 독법으로 관계 속의 위선을 해석해낸 문제작이다. ‘타운’ 시리즈 이후 독자적으로 장르를 해석해내고자 하는 전규환 감독의 다음 발걸음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