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과 김지운,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이 나란히 개봉한다. 기쁜 일이지만 이를 애국심 같은 감정으로 포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할리우드라는 무대가 세계 최고인 게 사실이긴 하지만, 두 감독이 ‘할리우드 진출’을 목표 삼아 영화를 만들어온 것이 아니므로 목청 높여 ‘한국영화의 쾌거’ 따위의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사실 두 감독을 포함해 여러 한국 감독이 할리우드로부터 부름을 받아온 건 꽤 오래된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때가 맞지 않았거나 할리우드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구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와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는 그들이 할리우드에서 만들고 싶었던 영화라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두 감독이 구상한 바가 한국에서만큼 척척 이뤄지지야 않았겠지만 그럭저럭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을 터. 두 영화가 궁금한 건 그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과 니콜 키드먼, 김지운 감독과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조합이나 <스토커>의 정정훈, <라스트 스탠드>의 김지용이라는 두 촬영감독의 활약상도 궁금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확인하고 싶은 건 <박쥐> 이후 4년 만에 복귀한 박찬욱 감독의 세계가 어떻게 발전했을지와 ‘장르 요리사’ 김지운 감독이 웨스턴의 고향인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서 어떤 활극을 펼쳐냈는지다. 해외에서의 뜨뜻미지근한 반응과 달리 <라스트 스탠드>의 시사회에 다녀온 기자들이 좋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우리 관객의 반응도 괜찮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로부터 다양한 재능을 수혈하려 하는 할리우드의 분위기나 한국영화의 활약상을 고려할 때 앞으로 보다 많은 한국 감독들이 해외를 무대 삼아 활약할 것이 틀림없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배우, 스탭들과 작업하다 보면 그들의 영화세계도 넓고 깊어질 것이다. 한국 감독, 그리고 영화인들이여 쭉쭉 뻗어나가시라.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편집장에서 물러난다. 2000년 10월 <씨네21>에 들어와 2004년 2월 떠날 때까지 164권, 그리고 2004년 8월 돌아와 이번 호까지 426권, 모두 590권의 <씨네21>에 참여했다. 편집장으로서는 153권을 만들었다. 지난주 이 자리에서 말했듯 주간지라는 실내 육상트랙을 590바퀴, 게다가 편집장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153바퀴를 돌다보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갔고 아이디어가 말라붙었으며 스트레스의 무게에 짓눌렸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제 나 또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게 될 것이다. 내 삶의 넓이와 깊이도 커지기를 희망한다.
<씨네21> 또한 새로워질 것이다. 다음주부터 편집장을 맡게 되는 이영진 기자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많이 갖고 있고 의욕도 충만하기에 보다 흥미진진하면서도 깊이있는 잡지로 바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P.S.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본의 아니게 상처 입히게 된 분들께는 진심으로 사죄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