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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누구의 유토피아입니까

평단의 뜨거운 지지 얻은 <비스트>의 성취와 아쉬움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말은 이럴 때 쓴다. 영화 <비스트>는 2012년 미국 독립영화계가 낳은 최고의 화제작이지만, 크레딧에 우리가 아는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뒤져봤다. 벤 제틀린 감독은 누구이고, 이 영화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으며, 해외 평자들이 쏟아낸 찬사는 동의할 만한가. 아마 누군가는 전반적인 만듦새와 올바른 태도만으로도 반길 것이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끝내 진짜 있어야 할 것이 없다고 불평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눈길을 끄는 데뷔작임은 분명하다.

폭풍 전야, 더 잃을 것도 없는 아버지는 술에 잔뜩 취한 채 겁에 질린 딸에게 소리친다. “두셋 집안 사람들은 용감해! 폭풍 따위에 굴하지 않는다고!” 그러고는 밖으로 뛰쳐나가 칠흑 같은 하늘을 향해 총을 쏴댄다. “덤벼라, 폭풍아! 다 죽어라! 나 여기 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부녀는 지붕 위에 올라 물에 잠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천재지변의 호령 아래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저 황량한 풍경 속에서 감히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쉬이 답할 순 없지만, 절망도 이르다. 허쉬파피와 윙크 부녀처럼 마을에 남기를 선택한 이웃들이 삼삼오오 수면 위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죽은 자들을 위한 장례식은 곧 산 자들을 위한 축제가 된다. 식탁 위에는 싱싱한 해산물이 커다란 바구니째 오르고, 어른들은 술잔을 기울이느라 정신이 없으며, 취기가 오른 어른들은 아이들을 앞에 두고 남녀 사이의 비밀스런 사연 혹은 농담을 입에 올린다. 남극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면 지도에서 지워지고 말 세상의 끝, ‘욕조섬’의 주민들은 그렇게 또 질척한 하룻밤을 버텨내고 있다.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한편”

실제 루이지애나 남부의 풍경과 기운을 옮겨 담은 <비스트>는 생에 대해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담한 열정을 지닌 영화다. 이 영화가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촬영상,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휩쓴 것도, 세계 유수 영화기자들과 영화평론가들에게 ‘올해의 발견’으로 꼽힌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회의주의에 윙크를, 냉정한 분석에 웃음을, 비판에 냉담한 시선을 날리는” 이 영화만큼 “이번 선댄스에서 흥분을 일으킨 작품은 없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고, 영화평론가 짐 호버먼은 “이 영화의 미친 열정은 매우 전염성이 강하다”며 한표를 던졌다. 그런가 하면 “이전에 선댄스가 배출했던 몇몇 선견지명의 영화들을 더이상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하는 순간,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비스트>라는 영화가 튀어나왔다”고 한 <필름 코멘트>나, “가끔 처음 듣는 감독이 만들고 처음 보는 얼굴들이 나오는 어떤 기적적인 영화들이 천재성으로 사람을 놀라게 할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비스트>는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한편이다”라고 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도, 새로운 재능의 출현에 반색을 표했다.

그렇다면 이 듣도 보도 못한, 갑자기 툭 튀어나온 미국 독립영화 <비스트>의 놀라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첫 번째는 땅이다. 2006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습격 이후 뉴올리언스로 터전을 옮긴 벤 제틀린 감독은 어릴 적 친구 루시 알리바의 원작 희곡 <달콤하고 맛있는>(Juicy and Delicious)을 보자마자 실물 배경으로 루이지애나 남부의 늪지대를 낙점했다. 실제로 지구온난화의 폐해로 매년 바닷물 속으로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는 그 지역 답사에 나선 제틀린은 촬영지로 고른 ‘장 샤를’이란 섬의 지형에 맞춰 이야기를 다듬기도 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기름 유출 사고를 견뎌낸 그 땅이 지닌 불굴의 기운은, 다가올 아버지의 죽음과 세계의 몰락을 나름의 논리로 극복해나가는 6살배기 소녀의 성장담에 구체적인 혈색을 더했다.

그 혈색이란 곧 야성이다. 버려진 컨테이너 박스 속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허쉬파피와 윙크 부녀는 ‘이 삶’보다 나은 ‘저 삶’을 갈망하지 않는다. 못 쓰게 된 트럭을 개조해 만든 보트를 타고 제방 근처로 나간 윙크는 허쉬파피에게 말한다. “저기 참 끔찍하지? 우리 사는 여기가 제일 예뻐.” 비바람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길 줄 아는 그 어여쁜 젖은 땅에서 그들은 자신의 조건을 껴안은 채 운명과 맞서 싸우기를 택한다. 광포한 자연을 피해 숨은 저 마른 땅에서는 삶도 죽음도 온전히 그들의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기 남는다.” 여기에서 그들은 자신의 “주인”이기에, 아버지는 딸이 홀로 남을 때를 대비해 맨손으로 고기 잡는 법과 맨손으로 꽃게 뜯어먹는 법을 가르칠 수 있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고대인들마냥 죽음 앞에서 질질 짜지 말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라 으름장을 놓을 수 있으며, 노인들은 태풍이 오건 말건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퍼마실 수 있다. 그들의 소박한 방종이 얼마나 강인한 생명력에서 비롯된 것인지, 후반부에 그들이 보호소에 수감된 동안 실감할 수 있다. 도시 문명의 비호 아래 안전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그것이, 위험하다는 말을 있는 그대로 느낄 줄 아는 그들에게는 살아 있다. 빙하 속에 잠들어 있다는 전설 속 맹수 오록스가 허쉬파피의 상상 속에 버젓이 살아 있듯 말이다. 그들 모두가 이 영화의 제목이 가리키는 ‘짐승들’ 혹은 ‘야수들’인 것이다.

그들의 생명력을 착취하지 않는다는 데 <비스트>의 미덕이 있다. 제틀린과 벤 리처드슨의 카메라는 결코 욕조섬의 어두운 현실을 전시하지 않는다. 제틀린의 표현을 빌리면 “카메라가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무언가가 빨리 움직이고 있는 느낌”을 담아내고자 허겁지겁 그들을 뒤쫓는 카메라는 그들 ‘위에서’ 내려다보는 법이 없이, 언제나 그들 ‘속에’ 섞여 있다. 특히 허쉬파피의 눈높이에서 영화를 만들기로 한 감독의 선택은 “정서적 긴장”은 살리고 ‘윤리적 오만’은 떨쳤다는 점에서 얼마간 적절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휴머니즘의 가면을 쓰고 중심과 주변의 수직적 질서를 재생산하는 영화들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불편함도 희미하다. 큰 스크린에서 볼 때는 어지러울 정도의 핸드헬드 카메라가 설득력을 가진다면 그런 이유에서다.

<비스트>가 가진 자들에 의한 가지지 못한 자들의 비뚤어진 초상이 되지 않는 데는 루이지애나에 살고 있는 제작진의 루이지애나에 대한 애정이 컸다. 제틀린이 속한 독립영화제작커뮤니티 ‘코트 13’(COURT 13)은, 제틀린이 10여년 전 졸업작품을 만들며 가까워진 친구들과 형성한 소규모의 민주적 창작 공동체로 2006년부터 뉴올리언스에 정착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2008년에는 <비스트>의 서곡이라 할 단편 <바다 위의 영광>(Glory at Sea)도 만들었다. 역시 허리케인의 상처를 판타지로 극복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어린 소년의 내레이션으로 풀어낸 이 단편은, 남부인들의 정신으로 충만한 공동작업의 산물이었다. 오디션은 현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근처 동네 바에서 진행됐고, 세트와 소품은 주변의 버려진 물건들로 만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작품에 참여하게 된 모든 구성원은 맡은 역할에 대해 최대한의 자유를 누렸다.

판타지라는 이름의 우회로

마찬가지로 <비스트>에서도 ‘공동작업’이 중요했다. 대표적인 예로 윙크 역을 맡은 드와이트 헨리는 오디션장으로 쓰인 빵집의 주인이었다. 프리 프로덕션 동안 그의 빵집은 밤이면 리허설 무대로 바뀌고는 했다. 헨리를 포함해 그곳에서 만난 현지 주민들의 사연도 이 영화에 더없이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다. 특히 실제 촬영지 근처 마을에서 발탁된 쿠벤자네 왈리스는 그런 허쉬파피에 기질과 경험에서 비롯한 여전사의 면모를 불어넣었다. 더불어 프로덕션 디자인에도 제틀린의 여동생과 함께 그 지역의 이런저런 장인들이 참여했다. 그들은 전체적으로 중요한 몇 가지 원칙만 익힌 뒤 자유롭게 무대와 소품을 제작해나갔고, 그렇게 그들의 취향이 영화 속으로도 흘러들었을 것이다. 그들 나름의 스튜디오도 루이지애나주 몬테규 517번 고속도로 부근 구(舊)클로드 부르그의 케이준 컨트리 주유소에 지어졌다. 편의점은 사무실로, 바퀴 창고는 미술팀 본부로, 새우 세척 시설은 소품 제작실로, 뒤뜰은 영화 속 무대로 바뀌었고, 그곳에서 80여명의 지역 주민과 스탭들이 서로 부대끼며 지냈다. 욕조섬 사람들처럼, 그들이 별별 사고에도 서로를 다독이며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 과정에서 형성된 긴밀한 유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크린에도 그 공동의 활력이 새겨져 있다.

작업 현장과 영화 현실 사이의 유사성 때문에 <비스트>는 종종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령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욕조섬 주민들이 폭죽을 터뜨리며 밤새 파티를 벌이는 장면은 현실에서 스탭들이 촬영장 근처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술과 노래에 취해 밤을 지새우는 풍경과 상당 부분 닮아 있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캠프를 짓는 장면은 스탭과 주민들이 어울려 주유소 뒷마당에 윙크와 허쉬파피의 집을 짓는 광경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처럼 영화를 만드는 현실을 다시 영화로 만들고 있는 듯한 인상 때문에, 때로는 그 장면들이 다소 정치적인 실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세계가 처한 곤궁을 “감정적으로” 느끼도록 하기 위해 <비스트>를 “정치적인 영화로부터 멀리 떼어놓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까닭은 그 실천의 방식에서 연유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의 설계와 무관하게 구체적인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 어떤 집단의 정치적 잠재력이 이 영화의 배경에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판타지도 현실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닌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우회로에 가깝다. 허쉬파피의 상상력은 두 가지 판타지를 펼쳐놓는다. 하나는 지구온난화로 잠에서 깨어난 오록스에 관한 차가운 판타지로, 때로는 자연재해의 위력을 체현하다가 때로는 소녀의 심리적 상태를 거울처럼 비추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천국에 간 엄마에 관한 따뜻한 판타지로, 바다 위에 세워진 천국(‘Elysium Fields’, <바다 위의 영광>에서도 쓰였다)에서 극적으로 표현된다. 편집을 통해 교묘하게 내통하고 있는 오록스와 엄마의 환영은 언뜻 고통스러운 현실을 편리하게 설명해주거나 잊게 해줄 장치 같다. 하지만 소녀가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궁극적으로 깨우쳐야 하는 것은 상온의 현실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욕조섬의 소멸이라는 현실. 그런 점에서 많은 평자들이 다큐멘터리와 판타지를 겹쳐놓은 듯한 이 영화로부터 환상을 통해 인간과 주변 세계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시도를 읽어내기도 했다.

다만 아쉬움은 감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논리적으로 동의되고, 미학적으로 준수해 보이는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 훌륭하다는 인상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흥미롭게도 몇몇 해외 평자 역시 이 영화가 일으킨 센세이션에 동조하면서도 “내가 이 영화를 좀더 즐길 수 있었더라면”(조너선 롬니) 하고 머리를 긁적인다. 왜일까. 영화라는 실천으로도 해소할 수 없는 어떤 거리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번개를 조명 삼아, 천둥을 드럼 삼아 디오니소스 축제를 벌일 줄 아는 남부인들에 대한 동경이 제틀린에게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 속에 섞여 들어가 ‘그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보아도 ‘그들’과 ‘나’의 자리를 뒤섞지는 못한 기미가 이 영화에는 묘하게도 남아 있다. 너무 많이 아는 백인 남성의 시선(혹은 판타지)과 아직 잘 모르는 흑인 소녀의 목소리(혹은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균열이 특히 마음에 걸린다. 왜 그는 허쉬파피가 ‘되기’를 선택했을까. 실제로 한 인터뷰에서 그는 “허쉬파피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열망이 감동을 보장해주진 못한 느낌이다.

결국 다음의 질문이 고개를 든다. 욕조섬은 누구의 유토피아인가. 감독은 그곳에 “나이, 인종, 자본 등의 기준으로 나눠지지 않은 세계”를 짓고자 했다. 하지만 욕조섬은, 그리고 그 모델이 됐을 법한 현실 속의 어떤 섬은, 나이, 인종, 자본에 의해 이미 나누어져 떨어져 나온 세계다. 이상에 눈이 멀어 그 사실을 잠시 잊은 이 다큐멘터리-판타지는 그래서 ‘그들’의 다큐멘터리가 되지 못한 ‘나’ 혹은 ‘우리’의 판타지에 머무르고 말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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