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의 3B라는 것이 있다. 미녀(beauty), 동물(beast), 아기(baby)를 일컫는데, 소비자의 시선을 쉽게 끌고 호감을 높이기 때문에 광고를 만들 때 주로 고려한다고 한다. 광고를 TV로, 소비자를 시청자로 바꾸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서 <두 여자의 위험한 동거>라고 알려진 <ABC>의 시트콤 <Don’t Trust the B…in Apartment 23>의 타이틀 속 B는, 저 3B 중에 없다. ‘23호 아파트의 그X를 믿지 마세요’ 정도로 직역하면 될 듯한 이 시트콤은 중서부 출신의 순진한 준(드리마 워커)이 꿈에 그리던 뉴욕에 입성하면서 시작된다. 월스트리트에서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이 되어 약혼자와 결혼하겠다는 준의 꿈은, 결국 커피전문점에서 주문을 받고 비좁은 아파트를 클로이(크리스텐 리터)라는 24시간 파티걸과 나누어 쓰는 쪽으로 현실화된다. 한데 준과 클로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준이 착실하게 준비한 꿈을 이루려고 한발한발 내딛는 타입이라면, 클로이는 모든 면에서 즉흥적이고 무책임하다. 21세기의 TV가 열광하는 4B가 있었다면 빠지지 않았을 그 B가 바로 클로이다. 발음상 ‘해변’이랑 비슷하고 잘못 들으면 ‘복숭아’ 같기도 한 그 B.
클로이의 B행각은 이 시트콤의 핵심으로, 공중파에서 용인되기 힘들 것 같은 기상천외한 구석이 있다. 준은 클로이가 온라인에 낸 룸메이트 광고를 보고 처음 클로이와 만난다. 23호로 올라가는 길에 한 여자가 경고한다. “아파트 23호의 그X를 믿지 마.” 알고 보니 클로이는 준 말고도 룸메이트를 10명쯤 구해놓고는 기괴한 행동으로 불편하게 만들어 렌트비를 돌려받지 못하고 떠나도록 하는 수법의 사기를 치는 중이었다. 한데 의외로 잡초 같은 구석이 있는 준은 그 사실을 알고는 클로이의 가구를 팔아서 복수한다. 준의 강력한 대응에 감탄한 클로이는 그 뒤로 준을 룸메이트로 인정하고, 그렇게 두 여자의 동거는 시작된다. 하지만 룸메이트가 되었다고 클로이가 변하거나 온순해지지는 않는다. 준에게 홈메이드 딸기잼을 만들어달라고 속인 뒤, 주방에서 끈적하고 달콤한 잼을 만드는 준의 몰카를 인터넷에서 파는 등 파렴치한 행각을 계속한다. 그래도 클로이에게 그 나름의 친절은 있다. 다른 여자와 양다리를 걸치고도 거짓말을 계속하는 준의 약혼자를 폭로하기 위해 자기가 직접 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클로이의 방식이다. 상식으로 똘똘 뭉친 준이 할 말을 잃고 바라보고 있으면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며 유유히 사라진다.
<두 여자의 위험한 동거>의 크리에이터는 <말콤네 좀 말려줘> <American Dad!>와 같은 가족코미디 작가 출신인 나나치카 칸이다. “여자가 나쁘게 행동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칸은 평소에 좋아하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속 홀리 고라이틀리가 21세기에 살아 있다면 클로이처럼 살지 않았을까를 상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짧게 살펴본 클로이의 스타일에서도 짐작했겠지만, 나나치카 칸은 위험한 코미디를 좋아한다. 조금만 잘못했다가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혹독한 비난을 면치 못할 그런 코미디 말이다. “누군가 내 코미디를 보고 기분이 아주 살짝 나빠진다면 그건 좋은 조짐일 것이다. 유머가 안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아슬아슬함 때문인지, 아니면 팬들만 좋아하는 비대중적 코드 때문인지 <두 여자의 위험한 동거>는 2013년 1월 시즌2를 끝까지 방영하지 못하고 종영되었다. 시트콤이 차고 넘치는 요즘이지만, 이 종영이 특히 아쉬운 이유는 클로이의 절친 셀러브리티로 등장했던 제임스 반 데 빅 때문이다. <도슨의 청춘일기> 속 그 제임스 반 데 빅 말이다. <도슨의 청춘일기>를 기억하는 그대에게, 반 데 빅이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하고 전라로 승마하는 사진이 실린 잡지가 보고 싶은 그대에게, 너무 일찍 접히고 만 이 시트콤을 꼭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