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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너무 정색하기 싫어서 코미디가 필요했다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13-02-08

<남쪽으로 튀어>로 돌아온 임순례 감독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말 한마디가 또 다른 억측을 낳고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이라….” <남쪽으로 튀어> 막바지 촬영이 한창이던 지난해 8월, 임순례 감독은 연출권을 침해받았다며 촬영을 중단하고 현장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현장에 복귀했다. 당연히 말들이 많았다. 제작자와 주연배우간에 마찰이 있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그 마찰의 수위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임순례 감독은 말을 아꼈다. 공개된 사실을 감추진 않았지만 적극적인 해명 또한 하지 않았다. 6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어오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 스스로도 정리의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원작을 각색하는 작업부터 한여름 섬에서의 촬영까지 고단한 일의 연속이었다는 <남쪽으로 튀어> 개봉을 앞두고 임순례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 말미, 국민의 의무 따위 안중에 없는 주인공 최해갑이 가족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훌쩍 떠나듯 임순례 감독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쿠다 히데오의 원작 소설은 언제 처음 읽었나. =일본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오쿠다 히데오도 이름만 들어 알고 있는 정도였다. <남쪽으로 튀어> 영화 제의를 받으면서 처음 읽었다. 듣기에, 2005년쯤 오쿠다 히데오의 인기가 한국에서 절정이었다더라. 일본 판권이 굉장히 비쌀 때였는데도 그의 책이 출판되면 한국에서 바로 판권이 팔릴 정도였다고. 그런데 영화로 각색하기가 쉬운 소설이 아니었다. 판권을 사들인 첫 번째 회사가 기간 내에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두 번째 회사가 다시 판권을 샀는데 또 실패했다. 그리고 지금의 제작자가 세 번째로 판권을 사서 영화로 만들었다. 오쿠다 히데오 입장에서도 영화로 만들어지진 않는데 계속 판권료만 들어오니까 이상했겠지. 작가로서 자기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걸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테고. 이번엔 꼭 잘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강하게 피력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연출 제의를 받은 게 2010년 여름쯤이었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후반작업을 하던 때였을 거다.

-감독으로서 욕심이 날 법한 이야기 같은데, 처음에는 연출 제의를 거절했다. =캐릭터가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나키스트라는 설정 자체가 굉장히 세니까. 만화로 혹은 소설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 캐릭터와 설정을 한국식으로 바꿨을 때 관객이 공감할 수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분량도 너무 길었다. 도쿄 이야기만 해도 두 시간, 섬 이야기만 해도 두 시간이 나온다. 여러 면에서 어렵다고 봤다.

-소설은 아들 지로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는 소설의 시점을 따르지 않는데. =두 가지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하나는 내레이션이 많이 나오게 된다는 거고 또 하나는 아역배우가 굉장히 비중이 커지는데 과연 김윤석의 존재감을 뛰어넘는 아역배우가 있을까 하는 거였다. 어린 여진구라면 모르겠지만. 또 성장영화처럼 그려지면 영화 자체가 작아지는 느낌도 들고. 결국 각색 작업에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이계벽, 최문석, 나현 작가 그리고 배우 김윤석까지 각본에 네명의 이름이 올랐다. 시나리오 작업은 어떻게 진행했나. =이계벽 작가와 최문석 작가가 먼저 공동작업을 했다. 제작자인 영화사 거미의 이미영 대표와 내가 동의를 했던 부분은 최해갑(김윤석) 캐릭터를 가볍게 가자는 거였다. 소설이 기본적으로 유머러스하기도 하고. 이계벽, 최문석 두 친구가 캐릭터 잡는 작업을 많이 했다. 나현 작가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같이한 친구인데 중간에 각색작업에 참여했다. 김윤석씨는 마지막 단계, 시나리오를 압축하고 정리하는 단계에서 많이 힘썼다.

-본인은 시나리오 작업에 관여하지 않았나. =내가 그동안 시나리오를 썼던 작품들, <세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같은 영화들이 흥행이 잘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내가 시나리오를 쓰면 굉장히 무거워질 거고, 마이너리티의 감성으로 흐를 것 같았다. 그래서 애초에 내가 시나리오를 쓰지 않기로 했다. 작가들의 버전은 계속 모니터하고 피드백을 했다. 중간에 각색이 잘 안 풀리고 답답해서 내가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는데 역시 무겁게 나오더라. 제작자가 안 좋아했다. (웃음)

-소설은 자본주의, 환경 파괴, 국가, 교육 등 다양한 주제를 얘기한다. 영화가 좀더 집중하고자 한 건 무엇이었나. =크게 교육과 자본의 문제였다. 환경문제도 결국 자본의 탐욕과 연결된다. 최해갑 가족이 발전기를 돌리면서 섬에 살게 놔둬도 되는데 그러지 않는다. 정치인이나 권력집단도 자본의 이익을 대리하는 주체로 등장하는 거고. 자본과 결탁한 권력이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을 어느 정도까지 핍박할 수 있는지 얘기하려 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극단적이어서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할지….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게 원작 소설의 매력이다. =영화에선 많이 순화했다. 최대한 한국적인 상황에 맞게,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까지 내려간 것 같다. 그리고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가지지 말고 배우지 말자, 그런 얘기를 너무 심각하게 정색하고 할 순 없지 않나. 그래서 코미디라는 기제가 필요했다.

-<남쪽으로 튀어>는 임순례 감독의 첫 번째 코미디영화로 볼 수도 있다. =나도 나름대로 소소하게 코미디를 한다.

-코미디를 의식한 장면들이 있다. 최해갑을 쫓던 두 요원이 최해갑 팬클럽을 가장해 사인받는 장면을 보면서 ‘임순례 감독의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했다. =상황에 맞게 유머 코드를 활용하는 걸 좋아한다. 공안을 설정한 건 서울과 섬을 연결해줄 인 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최해갑의 이야기를 관통해 따라가면 좋을 것 같았다. 사실 그렇게 멍청한 공안이 어딨으며 그렇게 쉽게 마음을 바꾸는 공안이 어딨겠나. 하지만 이야기가 무겁게 흘러갈 때 공안들이 양념처럼 웃음을 만드는 캐릭터로 약속돼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장면을 찍지 않을 거라 생각하나? 나중에 잘리긴 했지만 내가 낸 아이디어는 더 유치했다. 공안을 사생팬으로 설정한 장면이 있었는데 그게 뭐냐더라. (웃음)

-최해갑 가족이 서울에서 들섬으로 이사한 뒤부터 영화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편집할 때도, 시나리오 쓸 때도 서울과 들섬의 분량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제일 고민이었다. 두편 분량의 이야기를 압축하다보니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촬영은 섬이 훨씬 힘들었다. 완도 앞바다에 있는 대모도, 여서도, 청산도에서 찍었는데 상황도 열악했고 무엇보다 너무 더웠다. 편의시설이 없어서 화장실을 한번 가려면 사람들을 모집해서 봉고차 타고 이동해야 했다.

-몸의 반은 흰색이고 반은 검은색인 염소의 정체는 뭔가. =실제로 섬에 있던 염소다. 대모도에서 봤는데 신기했다. 시나리오상에 염소가 필요해서 이 아이를 영화에 출연시킬까 했는데 스탭들이 다 반대했다. 만에 하나 촬영 중에 염소에게 사고가 생길 수도 있지 않나. 그럴 때 대체할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나는 얘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고집부려서 촬영했다. CG팀에도 물어봤다. 혹시나 이 염소에게 문제가 생기면 CG팀에서 까만 염소를 반만 하얗게 만들어줄 수 있냐고. 굉장히 어려운 CG라더라. (웃음)

-들섬에 지은 최해갑의 집이 리조트 개발업자들에 의해 파괴되는 장면에선 자연스레 제주의 강정마을이 떠올랐다. 바리케이드와 포클레인의 이미지가 강렬했다. =의도한 건 아니다. 원작에 다 있는 내용이다. 다만 삶의 터전을 뺏기고, 주민들이 철거를 반대하는 장면이 있으니까 정서적인 측면에서 참고하라고 미술팀에 자료화면을 보낸 적은 있다.

-<남쪽으로 튀어>가 그 어느 작품보다도 힘들고 어려웠다는 말을 했는데. =일단 여름에 섬에서 촬영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주요 스탭, 특히 제작자와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영화를 찍어도 바로 직전에 찍은 영화가 제일 힘들다.

-현장에서 하차했을 당시 ‘연출권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 반복됐다’고 했다. 어디까지가 간섭이고 정당한 요구인지 서로 애매한 부분이 있는 문제인데, 간섭이라고 느꼈던 지점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그런 일은 없었고 화기애애했다고 말하는 것도 우습다. 그런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게 과연 시스템의 문제나 영화판의 지형 변화 때문인지, 아니면 제작자와 나의 커뮤니케이션 미스 때문인지…. 개인적인 궁합이 너무 안 맞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어쨌든 원인을 누가 제공했건 결과적으로 파행을 겪은 데엔 내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단도직입적으로 이런이런 점이 침해돼서 현장을 나왔다고 무 자르듯이 얘기하기가 힘들다. 또 모든 얘기는 상대적이니까. 이런 문제를 국과수에 얘기해서 정밀하게 원인분석을 해달라고 의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웃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이후 5년 만의 상업영화다. 현장이 변했다고 느꼈나. =(이번 문제의 핵심은) 시스템의 변화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변한 부분도 있겠지. 감독의 권한보다 제작자나 투자자의 입김이 예전보다 커진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계획된 다음 프로젝트는 뭔가. =아직은 얘기할 수 있는 게 없다. 일단 좀 쉬어야지. 쉬면서 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원래 한 작품 끝나고 다음 작품 들어가기 전에 정리를 하나. =그렇진 않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복기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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