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을 보면 당연히 그 안의 내용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마련이다. 소설가 고종석의 새 장편소설 <해피 패밀리>는 제목의 ‘해피’라는 단어 때문에 오히려 ‘언해피’한 가족의 이야기가 먼저 그려지는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상이 맞았다. <해피 패밀리>는 핏줄로 이어져 있기에 어떤 타인보다 가까울 수밖에 없으나 그러기에 더 잔인한 ‘가족’의 허상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가족 구성원의 이름을 딴 챕터로 나뉘어 있다. 한민형, 한진규, 민경화 등 가족 구성원은 각자 자신의 이름을 딴 챕터 안에서 개인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모두의 사연을 모아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는 개인의 초상화를 모아 만든 기이한 가족사진이 되는데 재밌는 것은 사진이 완성될 때 이 가족이 품은 비밀 또한 실체를 드러낸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해피 패밀리>는 모든 이의 입을 빌려 최후의 진실까지 달려나가게 만드는 서사구조가 매력적인 소설이다.
등장인물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는 왜 이 일가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어머니 민경화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아들 한민형은 어머니가 입양한 자식 영미를 도구처럼 생각한다는 이유로 부모와 사이가 틀어졌으며, 아버지 한진규는 아내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도 못 본 체한 죄책감이 가슴 언저리에 남아 있다. 영미와 동갑내기인 한민주는 영미가 하녀처럼 취급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자랐다. 이렇게 조금씩 틈이 벌어지던 가족의 관계는 2006년에 벌어진 ‘그 일’에 의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가족은 오랜 시간 행복의 상징처럼 혹은 근원처럼 여겨져왔으나 실은 가족이야말로 개인이 지키고 싶은 최후의 보루마저 짓이기는 가장 잔혹한 무엇일지도 모른다. <해피 패밀리>는 위선, 학대, 질투 등 가족간의 이해관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금지된 비밀을 공유한 이들의 비틀린 내면을 관찰한다. <해피 패밀리>는 얼마 전 절필을 선언한 고종석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