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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들의 반란 <굿바이 홈런>
이기준 2013-02-06

“꿈이 없이 살 수도 있어. 꿈만 꾸며 살 수도 있어.” 영화에 수록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 <너클볼 콤플렉스>의 첫 소절이다. 이 짤막한 두 마디의 노랫말에 오늘날 대한민국에 사는 청년들이 처한 가장 큰 딜레마가 숨어 있다. 요컨대 선택은 두 가지다. ‘꿈을 놓고 철저한 생활인으로 살거나, 아니면 꿈만 꾸면서 쫄쫄 굶거나.’ 이런 무자비한 이분법에 시달리는 것은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이 딜레마의 칼날을 서늘하게 느껴야만 하는 청춘들이 있다.

이정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굿바이 홈런>의 주인공들은 ‘야구의 불모지’라 불리는 강원도 지역의 만년꼴찌팀인 원주고등학교의 야구부 선수들이다. 영화는 2009년, 이 꼴찌들이 일으킨 반란을 줄기 삼아 진행된다. 황금사자기와 청룡기에서 1차전 탈락의 고배를 마신 원주고 야구부는 같은 해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제주고, 광주 진흥고, 제물포고를 파죽지세로 격파하며 전국대회 첫승과 최초의 4강 진출을 단번에 이루어낸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원주고의 선전에 다른 팀들은 물론이고 코치와 학부형, 심지어 선수 자신들까지도 놀란다. 하지만 파란은 준결승에서 끝이 나고, 원주고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한 두어명을 제외하고는 고교 선수생활을 끝으로 야구를 그만둔다.

영화가 그리는 고등학교 체육선수들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잔인하다. 자신이 훗날 ‘강민호 정도의 선수는 될 거다’라는 철없는 새내기의 말에 졸업을 앞둔 3학년 선배들은 피식 웃는다. “나도 1학년 때는 내가 홍성흔이나 김광현인 줄 알았다.” 아직 앳된 얼굴을 한 선수들의 피로한 표정에는, 전국의 야구부 졸업생 700명 중 단 70명만이 프로구단에 입단하는 엄혹한 야구계의 현실이 떼기 힘든 굳은살처럼 박혀 있다. 실제로 영화에 등장하는 2, 3학년 선수 중 몇몇은 ‘야구명문고’에 있다가 선발에서 밀려 출전의 기회를 얻기 위해 전학 온 선수들이다.

아쉽게도 <굿바이 홈런>은 고교 야구의 이면을 슬쩍 건드려놓고는 결국 변죽만 울리다 끝난다. 영화는 도입과 결말에서 고교 야구선수들이 직면한 차가운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처음과 끝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면에서는 통상적인 스포츠 극영화의 문법을 그대로 따른다. 이미 영화 속의 몇몇 장면을 통해 경기장 바깥의 선수들의 삶을 봐버린 관객으로서는, 펜스 안쪽에서 벌어지는 기쁨과 흥분의 열기가 영화가 겨냥했던 또 하나의 지점을 애써 외면하게 만든다는 느낌을 받는다. 중의적으로 읽힐 수 있는 영화의 제목처럼, 선수로서 일생에서 한번쯤 꿈꾸는 ‘굿바이 홈런’과, 항상 바라는 ‘홈런’을 향해 아쉽게도 ‘굿바이’를 고해야 하는 선수들의 현실을 균형감있게 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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