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헤딩하기였다. 제작비도, 아는 스탭도, 아무것도 없었다. 운 좋게도 제작사 DIMA엔터테인먼트가 4500여만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박홍민 감독은 그 돈으로 첫 장편영화 <물고기>를 찍을 수 있었다. 그것도 3D로. <물고기>는 한 남자(이장훈)가 갑자기 사라진 아내(최소은)를 찾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아내가 진도에서 무당이 됐다는 소식을 흥신소 직원(김선빈)을 통해 듣고 남자는 진도로 향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를 묘하게 뒤섞는다. 박홍민 감독은 “되돌아보면 영화가 많이 서툰 것 같다. 그럼에도 영화를 처음 구상할 때 했던 고민과 진심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라고 장편 데뷔 소감을 밝혔다.
-진도 씻김굿과 관련한 사진 한장에서 출발했다고 들었다. =2008년쯤인가. 아는 교수님께서 씻김굿에 대해 들어봤냐고 물어보셨다. 기회가 되면 한번 보라면서. 인터넷에서 검색했는데 사진이 한장 뜨더라. 보통 무당 하면 작두를 타거나 엑소시스트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그 사진은 그렇지 않았다. 흰색 한복을 입은 무당이 바닷가에서 긴 막대를 들고 행진하는, 지극히 소박한 풍경이었다.
-진도에 내려간 것도 그때인가.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다.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도 만나고, 그들이 살아가는 풍경도 보고, 씻김굿도 지켜볼 수 있었다. 시골이라 마을 사람 모두 순수하고 인간적이었다.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씻김굿의 어떤 면을 보고 영화를 찍고 싶던가. =무당은 내적 성찰과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무당은 자신을 버리고 남을 받는 존재잖나. 신내림을 받을 때 몸이 아프고 괴로운 것도 그런 과정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남을 인정해야 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무당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까닭에 굿을 보지 못했는데, 굿을 구경하면서 느낀 것이 많았다. 나 자신도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이 정말 믿을 만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런 주제를 다룬 영화를 만들면 다른 사람들 역시 공감할 수 있겠다 싶었다.
-왜 3D로 찍을 생각을 하게 됐나. =원래는 2D로 찍을 생각이었다. <물고기>의 최성원 촬영감독이 조명감독 출신이다(<여고괴담2>(1999), <귀신이 산다>(2004), <아파트>(2006) 등 여러 작품에서 조명을 맡았다). 2009년 <물고기>를 준비할 때 그가 관심을 많이 보였다. 어느 날,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입체영화 컨퍼런스를 하는데 보러 오라고 하더라. 갔더니 3D 테스트 촬영을 하고 있더라. 처음에는 3D가 불편했다. 내 눈에는 3D가 리얼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최성원 촬영감독이 <물고기>를 제작한 DIMA엔터테인먼트가 정부로부터 받은 입체영상제작 관련 지원금이 있다며 연결해줬다. 그게 4500만원 정도였는데,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아 둘 다 아는 사람한테 도와달라고 연락하기 시작했다.
-2D로 찍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전체적인 컷 전개 방식이 달라졌을 것이다.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화면 전개가 빠른 컷은 감상하는 데 불편할 수 있다. 그래서 카메라를 고정하고, 주로 롱테이크로 찍은 컷이 많다. 2D였다면 그렇게 찍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또, 관객이 안경을 쓰고 감상한다는 점에서 3D영화는 경계와 관련한 매체이다. 이야기 곳곳에 수시로 창문, 거울 같은 풍경을 반복적으로 포함시킨 것도 그런 경계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단돈 7천만원으로 겨우 찍은 셈이다. 촬영이 끝났을 때 어떻던가. =공포감부터 몰려왔다. 후반작업을 맡아줄 사람이 없었다. 후반작업할 예산도 없었고. 스탭, 배우 등 스무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한달 동안 시간을 내서 진도까지 온 건데, 감독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잖나. 많은 사람의 도움 덕분에 겨우 완성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차기작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지난해부터 고민하고 있는 게 있다. 서울 도심에서 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떤 상황에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고민하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은가보다. =인간이 가진 내적인 것에 대한 고민이 많다. 전작 <괴롭히는 여자>(2010)도 그런 스타일이었다. 어쨌거나 사람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을 탐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개인의 탐구를 막는 게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고, 사회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그런 고민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