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친구 아버지는 칠순이 훌쩍 넘도록 일을 가리지 않고 밥벌이를 하셨다. 술을 좋아하셨던 것 외에 별다른 취향도 요구도 내세운 일이 없다. 자취하는 막내딸 집에 ‘우렁아비’처럼 찾아와 슬그머니 밀린 빨래를 해놓고 가시곤 했다. 막내딸이 순산하는 걸 본 뒤 황망하다 싶을 만큼 짧게 아프시고 곱게 돌아가셨다. 유품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때 사람들이 쓰던 종이모자가 나왔다고 한다. 가족들 아무도 몰랐단다. 건강도 시원찮으면서 언제 그런 데는 쫓아다녔는지 모르겠다고 친구가 얘기해주었을 때 나는 유족 보기 민망할 정도로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조용하고 정직한 단독자였다.
팔순이 넘은 내 아버지의 가장 큰 미덕은 당신이 ‘뒷방 늙은이’ 취급받는 걸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나름 ‘끗발있는’ 한 시절을 보냈지만 어찌나 실용적인지 버리려고 내놓은 낡은 사위 옷을 태연히 입고 앉아 있고, 자식들이 모였을 때 언뜻 유언처럼 보일 ‘말씀’을 적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눠줬는데 어디 유원지 메모지를 자른 종이였다(당연히 팔순잔치도 필요없다며 돈으로 달라고 하셨다). 궁상을 떠는 게 아니라 허세와 집착을 내려놓은 것 같아 품위있어 보인다. 밥을 차려드려도 무조건 맛있다고 하고(그래야 또 얻어먹는다는 걸 연륜과 경륜으로 파악한 것임) 선물을 드려도 무조건 좋다고 한다(그러곤 몰래 가서 바꾼다). 내 아버지는 잘 늙어가시는 것 같다.
투기와 특혜 의혹들이 불거지며 ‘제대로 된 보수 없다’는 정설을 확인해주고 자진사퇴한 총리 후보는, 왠지 노후가 리얼하게 그려지는 인수위 ‘단독기자’에 이어 흡입기라는 별명을 가진 최근 소재불상의 어떤 분을 포함해 ‘늙음’에 대한 교훈을 준다. 무엇을 누리고 갖느냐가 아니라 삶과 세상에 대한 ‘태도’가 늙음의 모습을 가른다. 철학자 강상중 선생은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 그 태도의 중심을 잡아준다. 한계를 인정하되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것. 좋은 미래가 아니라 좋은 과거를 쌓는 마음으로 사는 것. 인생이 끝나기 전까지 좋은 인생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기 수첩밖에 믿지 못하는 박근혜 당선인의 ‘진갑’이 유독 안쓰럽다. 친구도 지인도 없이 나이 먹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때론 위험하다. 정치인은 다르다고? 당신도 나도 보고 겪은바, 하나도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