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이 전지현에게 남긴 건 ‘1천만 관객’이라는 흥행 성적뿐만이 아니다. 여러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그는 자신감을 얻었다. <도둑들>이 그랬듯 “다음 작품도 주연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거든요. 작품을 쉬기보다 그 기분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베를린>의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류승완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먼저 요청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표종성(하정우)의 아내이자 베를린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일하는 통역관 련정희 역은 그렇게 전지현의 손에 쥐어졌다. “외롭고 음울하고 아름다운 여인이다.” <베를린> 제작발표회 때 류승완 감독은 련정희를 그렇게 소개했다. 비밀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의 운명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표현이자 냉전 시대의 마지막 격전지인 베를린의 잿빛 하늘과 더없이 어울리는 소개다. 남편 표종성이 남과 북 양쪽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면서 련정희 역시 남편과 함께 거대한 파도 앞에 서게 된다. 남편에게조차 털어놓지 않은 비밀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속마음을 가슴 깊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련정희는 영화 내내 방방 뛰었던 <도둑들>의 ‘예니콜’과 달라도 한참 다른 여자였다. “힘들었어요. 원래 성격이 밝은 데다가 <도둑들>을 하고 바로 <베를린>으로 넘어갔으니까. <도둑들> 때는 뭐든지 밖으로 드러내는 캐릭터라 하고 나면 속이 시원했어요. 반면 련정희는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무언가를 항상 숨기고 있는 캐릭터라 감정의 많은 것들을 안에서 죽이고 있어야 했어요.” 현장에서 어색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인 그에게 속마음을 알 듯 모를 듯한 련정희는 그야말로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었다.
사실 류승완 감독은 련정희 역에 전지현을 캐스팅하면서 약간의 우려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오해는 말자. 전지현의 자질을 의심하는 얘기가 아니다. <도둑들>의 흥행과 결혼생활의 시작으로 “붕 뜬 상태가 된” 전지현과 련정희를 연결짓는 건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니까. 현장에서 전지현을 외롭게 두려고 했던 것도 류승완 감독의 배우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지현은 스스로를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가 아니라고 한다. “배우마다 다르겠지만 슬픈 연기를 해야 한다고 해서 그 날의 제 상황을 슬프게 만들진 않아요.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배우가 배역의 감정에 푹 빠져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편하고 자유로워야 집중할 수 있는 스타일이에요.”
외려 자신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련정희를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서 어른이 된 것 같았어요. 련정희의 어른스러운 행동을 직접 하면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았어요. 아내로서 련정희가 남편 표종성에게 하는 대사를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어요.” 오히려 힘들었던 건 북한 사투리였다. 아무래도 입에 쉽게 붙지 않은 말투였으니까. 그럼에도 낯선 말투는 련정희에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었다. “베를린 로케이션 촬영은 대사가 거의 없었어요. 액션 시퀀스 분량이었거든요. 국내 세트 촬영에 들어가면서 북한 사투리를 처음 썼는데 비로소 련정희가 된 걸 실감했어요.” 또 한번 만만치 않은 도전을 마쳤지만 전지현은 <베를린>을 “참여하는 데 깊은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겸손해했다. 그 말은 <도둑들>의 예니콜로부터 저만치 멀리 간 전지현의 자신감이기도 하다.
<씨네21> SNS를 통해 받은 독자들의 질문
-최근에 부상 소식을 접했습니다. 따로 체력 관리를 위해 하는 운동이 있나요?_wacle2009(미투데이) =탄피가 터지면서 파편이 얼굴에 튀었어요.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파편이 튀면서 얼굴의 살집이 떨어져나간 거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울 수는 없었고. 많이 다친 상태가 아니라 티는 안 났죠. (후반작업 때 그 장면을 썼나요?) 네, 썼대요. 굉장히 리얼하게 나왔을 거예요. 매일 아침 운동해요. 심심하거나 갈 데 없으면 헬스클럽 가고. 운동은 생활이자 습관이죠.
-영화 촬영차 갔던 베를린은 어땠나요?_pinksyd01(페이스북) =아무래도 베를린 로케이션 현장이 주는 기운 같은 게 있어요. 그 기운의 도움을 실제로 받기도하고요. 다른 배우와 달리 저는 액션 분량을 제외하면 촬영 분량이 많진 않았어요. 국내 촬영의 비중이 더 컸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