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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깨어나라! 유령들이여
이영진 2013-01-30

<스펙타클과 우회의 전략, 기 드보르와 국제상황주의 展>,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1월24일부터 2월28일까지

<분리에 대한 비판>

<예술이 그 자체로 아주 짧은 시간을 거친 몇몇 사람들의 행로에 관하여>

“1789년 사드는 바스티유 감옥에서 풀려났다. 1848년 보들레르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가전을 벌였다. 1870년 쿠르베는 파리 방돔 광장의 나폴레옹 동상을 무너뜨렸다.” 피터 월렌은 <순수주의의 종언>에서 프랑스 정치사에는 “민중혁명과 예술혁명간의 수렴을 축하하는 장엄하고 전설적인 순간들이 있다”고 썼다. 혁명의 기치 아래 예술이 정치를 껴안고, 정치가 예술로 향하는 전복적인 합일의 장면들은 20세기에도 분출됐다.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자양분을 얻은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운동과 1968년 5월의 불씨를 지핀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tuationist International, 이하 SI)이 대표적이다. 특히 SI는 예술과 정치 사이에 놓인 장벽을 허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예술의 소멸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최후의 아방가르드’라고 일컬어진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1월24일부터 2월28일까지 열리는 <스펙타클과 우회의 전략, 기 드보르와 국제상황주의 展>(상영일정은 127쪽 ‘게시판’ 참조)은 “영화는 없다, 영화는 죽었기에 더는 없다”는 기 드보르의 저주가 겨냥한 표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더듬어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문자주의 인터내셔널과 이미지주의 바우하우스라는 아방가르드 단체가 결합한 SI는 1957년 이탈리아에서 결성됐다. 이들은 ‘고급 부르주아 문화와 정치에 대한 반대행동’을 목적으로 했지만, 기존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나 초현실주의를 따르지 않았다. SI는 예술과 정치가 서로를 용해시키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이라는 또 다른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바보들에 의해 건설된, 아무것도 의미하지 못하는 도시”에서 배회하며 살아가는 유령들을 어떻게 깨울 것인가. 창조적 체험과 잠재적 가능성으로 충만한 ‘상황’의 창출이야말로 SI의 주된 관심이었다.

예언자들의 극단적인 도발에 유령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기 드보르의 첫 번째 영화 <사드를 위해 절규함>은 1952년 6월30일 파리의 ‘아방가르드 시네클럽’에서 처음 상영됐는데, “불만에 찬 관객과 극장 관리자들에 의해 중단”됐다. 그럴 법도 하다. 상영시간 62분 동안 어떤 이미지도 제공하지 않는, 무상(無象)영화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유린하고, 절멸시킨 자들의 혼돈스러운 중얼거림만이 분절되어 반복된다. <예술이 그 자체로 아주 짧은 시간을 거친 몇몇 사람들의 행로에 관하여>(1959)와 <분리에 대한 비판>(1961) 등에서도 이미지와 사운드를 접합하는 기존의 재현 체계는 적극적으로 거부된다. 재현에 대한 증오는 그렇다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가 1967년에 쓴 <스펙터클의 사회>는 그가 만든 6편의 영화에 대한 주석이기도 하다. 이에 따르면, 스펙터클은 “이미지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간의 사회적 관계”이며, “하나의 이미지가 될 정도로 축적된 자본”이다. 스펙터클 아래서 “삶의 경험들을 박탈당한” 사람들은 소외된 구경꾼으로 전락한다.

1920년대 말 들이닥친 세계적 대공황은 “사람들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자극하”는 자본주의를 강요했다. 소비가 미덕이 된 것이다. “이미지로 최후 변신한 자본은 사회적 생산 전체를 위조한 뒤에 삶 전체를 지배하는 절대적이고 무책임한 주권의 지위에 도달한다.”(조르조 아감벤) 사이비-물신(物神)의 전횡 앞에서 영화와 예술도 ‘특정 감각의 특권화’를 통해 “인간의 지각 능력을 왜곡”한다. 기 드보르가 “다른 이미지들과 함께 어떤 의미를 실현시키며 사라지는 매개체”로서의 이미지를 폐기하는 건 그 때문이다. 물론 그의 반(反)영화는 성공하지 못했다. 1972년 SI는 해산됐고, 기 드보르는 1994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의 섬광 같은 통찰은 거대한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전략으로 여겨진다.

(참조 <스펙터클의 사회> <순수주의의 종언>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목적없는 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