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주먹을 입속에 처박고 허걱 하는 표정을 나도 모르게 지었다. 관리비 고지서를 받아들고서다. 지난해 이맘때 것을 찾아보니 정확히 25%가 올랐다. 체감으로는 두배는 뛴 듯하다. 버는 건 큰 차이가 없는데 기본 생활비가 너무 올랐다. 전기, 가스, 수도 등 기본 공공요금이며 생필품값, 하다못해 과자값, 심지어 시민회관에서 하는 애 합기도 수련비까지 올랐다. 야금야금 올린다는 미풍양속도 없이 그냥 확, 기다렸다는 듯이 몽땅, 올랐다. 특히 공공요금은 대선 직후 인상폭이 가장 컸다. 마지막까지 이렇게 얄미운 정권도 드물 것이다.
정규직 월급으로 벌이가 있는 처지에 징징대기도 염치없는 세상이다. 이 마당에 왜 하필 연금문제로 민심을 흉흉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기초노령연금과 장애인연금을 기초연금으로 해 국민연금과 통합운영한다는 인수위의 구상은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이기도 하지만, ‘국민연금에서 돈을 돌릴까? 연금 수령을 68살부터 할까? 싫어? 겁나? 아님 말고’ 식의 ‘밑밥질’과 ‘간보기’는 괘씸하다. 연금문제는 대다수 국민의 생존의 영역이다. 더 잘 살게 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 살 수 있게 하는 거다. 젊고 수입 있는 내가 늙고 수입 없는 부모를 먹여살리는 건 당연하다. 사지 멀쩡한 사람이 몸 놀리기 힘든 사람을 먹여살리는 것도 당연하다. 그걸 나라 전체가 공적 부조로 하자는 거다. 거의 모든 국민의 이해관계는 물론 목숨줄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멀리 내다보고 강박 수준으로 꼼꼼하게 따지고 설계하고 설득하고, 신뢰와 예측 가능성을 바탕으로 한땀한땀 힘겹게 지어내야 마땅한 정책이다. 그런데 불쑥 당장 돈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로 던져버리니, 이렇게 무책임한 태도가 어디 있나. 특히 이 과정에서 세대 갈등을 조장하는 건 참으로 기분 더럽다. 더 기분 더러운 건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 최악의 나라에서 이렇게 지지고 볶는 노령연금 액수가 고작 용돈 수준이라는 거다. 소고기 한번 사먹기는커녕 공공요금과 쌀값 대기에도 빠듯한…. 연금문제는 세대 갈등이 아니라 계층(계급) 갈등의 영역이다. 이런 갈등은 필연적이고 그걸 잘 풀어내라고 정부가 있는 거다. 나는 이건희도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건희가 낼 세금은 놔둔 채 내 유일한 노후대책을 위협하는 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