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천재 예술가들의 삶을 다룬 콜린 윌슨의 비평서 <아웃사이더>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주목. <정신기생체>는, <아웃사이더>의 주제를 연장하되 거기에 SF라는 형식을 입히고 H. P. 러브크래프트풍 양념을 살짝 얹은(러브크래프트가 이 소설의 탄생에 어떻게 기여했는지에 관한 재미있는 스토리가 서문에 나와 있다) 작품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신기생체>를 먼저 만난 SF 독자라면 이 소설과 이란성 쌍둥이 관계인 <아웃사이더>에 대한 호기심이 솟아날 것이다.
두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기계적이고 우리의 본질에서 먼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당신이라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돈? 가족 혹은 타인? 사회구조? 철학과 심리학 전문가이면서 SF 애호가였던 윌슨은 두 가지 버전으로 흥미로운 대답을 내놓았다.
<정신기생체>는 꽤 독창적인 SF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괴물들을 당당히 실체로 내세우고, 사건보다는 사변의 전개를 통해 그 실체에 다가간다. 주인공들이 그들과 맞서는 일이 순전히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방법이 후설의 현상학(!)이라는 점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내면의 독백, 그것도 존재론에까지 닿는 관념적인 사변을 이렇게 장광설로 늘어놓는데도 장르소설이 되다니! 마음의 심연으로 내려가며 인간 존재를 한겹씩 벗겨가는 작가의 사유들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기도 하거니와 그 진지함 때문에 우주적인 스케일로 급진전되는 후반부 스토리와 대비되면서 독특한 유쾌함을 유발한다. 불행한 아웃사이더들을 사랑한 윌슨은 실은 엄청나게 낙천적인 사람이었던 듯싶다. 안타깝게도, 악몽 같은 자기계발 과잉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화자의 과도하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어쩔 수 없이 조금은 미심쩍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이 1967년에 씌어졌다는 걸 기억하자. 어쨌거나 유쾌하지 않은가, 우리가 우울한 건 우리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실은 정신에 기생하는 외계 생명체 때문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그 마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