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9일 영화계의 노사정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협약식’을 체결했다. 이 자리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CJ E&M, CJ CGV, 한국영화산업노조는 영화산업 종사자의 고용복지를 위해 현장 영화인 교육훈련인센티브 제도 확대, 4대 보험 가입률 제고,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등 산적한 문제를 긴밀하게 협력해나갈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영화 관객 1억명 시대를 열었지만 영화 스탭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가. 최근 1년간 영화 제작에 참여한 한국 영화 스탭 중 66%가 법정 최저임금(월 95만7200원)에도 못 미치는 소득을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으로부터 입수한 ‘2012년 영화 스탭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영화인 총 598명 중 66%에 해당하는 275명이 연 1천만원 미만(월 92만2500원)의 소득을 올렸다(표1 참조). 그리고 598명 중 41.7%에 해당하는 243명은 연간 수입이 500만원 미만이라 1인 가구 월 최저생계비(45만3049원)도 벌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화 스탭의 상당수가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2012년 영화 스탭 근로실태조사’는 영화진흥위원회/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한국영화제작가협회로 구성된 영화산업협력위원회가 영화제작사 대표 17명, 감독 및 기사급 98명, 팀장급 이하 스탭 431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24일부터 11월20일까지 진행한 설문 조사다. 2009년 발표했던 영화산업협력위원회의 영화 스탭 근로실태조사 이후 3년 만이다. 차이라면 2009년 조사에서 제외됐던 후반작업 스탭들이 이번 설문 대상에 포함됐고, 그 결과가 함께 반영됐다는 것이다.
수습 등 경력이 짧은 스탭의 소득은 월 45만원
이번 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영화 스탭에 대한 고용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다. 매년 스탭이 참여하는 작품 편수는 평균 1.95편이다. 설문 응답자의 37.8%가 1편, 26.9%가 1편 이상 2편 이하, 15.2%가 1편 미만에 참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편집(4.75편)이나 CG 및 DI(3.93편) 같은 후반작업의 종사자들의 편수가 다소 많은 것을 감안하면 연출(1.2편)/제작(1.2편)/기획(1편)/시나리오(1.18편) 같은 스탭은 보통 1년에 한편 정도 참여한다고 보면 된다. 촬영(1.55편)/조명(1.84편)을 비롯한 프로덕션 과정부터 합류하는 기술 스탭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연간 평균 제작 참여 기간은 6.92개월인데, 1년에 한 작품을 한다고 치면 1년 중 근무시간은 반년에 불과하다. 물론 현상, CG 및 DI(11개월 이상)나 사운드 믹싱과 특수효과(10개월 이상) 같은 후반작업 종사자나 기술 스탭은 1년 내내 근무하지만 말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스탭의 처우 문제 역시 심각하다. 물론 파트별 소득 차이는 있다. CG 및 DI 파트의 스탭이 연평균 2274만원으로 가장 많으며, 연출부 스탭이 554만원으로 가장 적었다. 기술 스탭 역시 아주 나쁘지 않은 편이다. 조명 스탭은 1422만원이고 촬영 스탭은 1253만원이다. 프로덕션 단계부터 합류하는 스탭 중 특수효과 부문이 2225만원으로 소득이 가장 많다. 눈에 띄는 건 영화 일을 막 시작한 수습(막내)과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서드(3rd) 스탭이 월 45만원도 채 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표2, 표3 참조).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땜빵’식 채용을 한 결과다. 월 45만원은 젊은 스탭이 경력을 오래 이어가기 어려운 소득인데, 이 구조가 계속되면 앞으로 현장에서 전문성을 갖춘 스탭을 찾아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월화수목금금금의 노동
근로시간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많은 편이다. 주 5일제 근무? 영화 스탭과 거리가 먼 단어다. 프로덕션 기간 동안 주 5일 근무하는 스탭은 37.8%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과반수가 매주 하루만 쉬거나 일주일 내내 일을 했다(표5 참조). 물론 촬영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영화 현장을 일반 사업장과 동일한 시선으로 보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 프로덕션 기간 1일 평균 근로시간 역시 법정 기준치인 8시간을 초과했다.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7.3%에 불과했다(표4 참조).
여전히 지지부진한 4대 보험 가입
지난해 열린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협약식에서 체결된 내용 중 하나인 4대 보험 역시 아직 현장에 뿌리내리지 않았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스탭(63.3%)이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고용보험은 실업급여와 관련해 회사와 근로자가 0.55%씩 동등하게 분담하고 회사는 실업급여 이외에 고용 안정 및 직업능력개발사업과 관련해 고용한 인원수에 따라 0.25~0.85%를 납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영화사나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인력 규모가 150인 미만이기 때문에 영화사는 0.25%를 납부하면 된다. 경력 10년차인 한 촬영부 스탭은 “현장의 스탭 대부분은 4대 보험 같은 복지문제를 모른다”며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제작사가 채용을 꺼릴까봐 가입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노조 최진욱 위원장은 “그건 사쪽(제작사)의 의무 사항이다. 4대 보험에 가입했다고 채용하지 않는 건 불법”이라며 “그 이유로 피해를 본 스탭은 영화 노조에 신고하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스탭은 “피해를 본 뒤 법적으로 대응해봐야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를 일”이라며 “4대 보험 같은 복지문제가 하루빨리 현장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밖에도 인센티브(성과금) 지급, 임금 체불, 표준계약서를 통한 계약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표준계약서 도입의 필요성
문제 해결 방안을 말하기 위해서는 다시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빤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기업 투자배급사, 제작사는 스탭의 처우 개선이 반영된 표준계약서로 계약해야 한다. 4대 보험을 비롯한 여러 복지문제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스탭 역시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권리를 숙지하고, 그것을 제작사에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운영하고 있는 훈련 인센티브 제도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교육 훈련이 끝나면 훈련 인센티브 100만원이 지급된다). 챙길 건 챙겨야 한다. 꿈과 열정을 착취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12년 영화 스탭 근로실태조사’ 보고서를 1월 말 발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