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성생활을 하지만, 우리는 거의 예외없이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섹스’에 대해 이상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알랭 드 보통이 쓴 <인생학교 - 섹스>의 첫 문장이다. 왼쪽 페이지에 소개된 책과 키워드가 ‘섹스’로 일치하고 번역자도 같지만 두 책의 공통점은 그게 다다. 보통은 특유의 다소 학구적인 태도로, 우리 모두 섹스에 관해서라면 약간씩 이상한 면을 지니고 있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여러 행위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시킨다. 때로 연애의 과정이 읊어지고 페티시즘이 도마에 오르지만, 섹시함의 의미(우리가 누군가의 옷차림을 보고 섹시하다고 말할 때, 그 말 속에는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세계관이 마음에 든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거절당한다는 행위(거절을 ‘도덕적 판단’으로 생각해버리는 나쁜 버릇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발기불능까지 다루어진다(특정 문제 해결을 위해 유익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삽화가 한 페이지 크기로 실려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지금 바로 옆에 있는 한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발견하자는 생각이 있다. 이상적인 사람을 찾는 법이 아니라 지금 바로 옆에 있는 한 사람에 집중하기 말이다. “성인기의 사랑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려면, 어린 시절에 사랑받던 느낌을 기억하기보다는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데 무엇을 감수했는지, 다시 말해 얼마나 큰 노력을 쏟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니까 이상을 버리고 이성을 찾기. “결혼생활에서 우리가 원하는 세 가지 요소, 즉 사랑, 섹스, 가족은 서로에게 잔인한 영향력과 피해를 입히는 관계”임을 받아들이기.
알랭 드 보통은 <씨네21>과 인터뷰했을 때 ‘인생학교’ 시리즈를 ‘지적인 자기계발서 시리즈’라고 소개했었다. 6권이 함께 소개되었고 섹스, 돈, 일, 정신, 세상, 시간을 다루고 있으며(이중 ‘시간’ 편은 엄밀히 말하면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는 법에 대한 글이다) 인터넷 서점의 판매지수 추이를 보아 짐작건대 사람들은 저 여섯 가지 이슈 중 섹스에 가장 큰 관심이 있거나 혹은 알랭 드 보통의 글에 가장 열렬하게 반응한다(시리즈의 다른 작가들보다 글을 더 재미있게 쓰는 건 확실하다). 어느 쪽이라 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시리즈를 한권씩 읽다 새삼 알았는데, 알랭 드 보통의 독자가 되기 위해서는(이 시리즈의 책들은 각각 다른 필자가 썼지만 이런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내게 일정 정도의 지적, 금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직업을 갖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부족하지 않은 돈이 있는데 돈 걱정으로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에게, 디지털 기계에 둘러싸여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물리적으로 궁핍한 현실에 지친 사람에게는 이 시리즈가 던지는 근원적 질문들이 팔자 좋은 사람들의 투정으로 들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