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파이어 유혹>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필두로 한 ‘그림자’ 시리즈 같은 에로티카 삼부작이다. 에로티카는 로맨스의 하위 장르인데, ‘그레이’ 시리즈 이전에는 엄밀히 말해 로맨스보다는 포르노에 더 가까운 인상이 짙은 장르이기도 했다. 애초에 여주인공이 처녀인 설정부터가 많지 않았다. 사랑뿐 아니라 섹스를 여자들이 소비한다(남자를 위한 에로티카/포르노와 다른 점은, 여자가 독자인 책에서는 가능하면 1대1 관계가 주를 이루지만 남자가 독자인 책에서는 여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20여년 전 교복 입은 소년들에게 판타지를 제공했던 도미시마 다케오 소설들이 대표적이다). ‘크로스파이어’ 삼부작을 쓴 실비아 데이는 미국에서 잘 알려진 로맨스 소설 작가로, EBOOK은 이미 한국에서도 판매순위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EBOOK 시장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장르소설을, 무엇보다도 로맨스라는 장르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가격 정책도 종이책-EBOOK 전환을 기본으로 하는 출판계 관행을 따르지 않아 권당 2천원에서 3500원 정도 한다(‘그레이’와 ‘크로스파이어’ 시리즈는 가격으로 보면 기존 로맨스보다는 일반 종이책-EBOOK의 관행을 따르는 포지셔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E. L. 제임스의 세계를 이미 경험한 독자라면 <크로스파이어 유혹>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UK펭귄사에서 출간되어 해당 출판사 역사상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400만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치명적인 성적 매력과 세계에서 손꼽히는 재력, 어두운 과거를 가진 남자 기데온 크로스가 소유한 크로스파이어 빌딩에 입주한 광고 에이전시에 입사하게 된 금발의 에바 트라멜의 사랑과 섹스 이야기. 하다못해 햄버거 먹는 장면도 순식간에 에로틱해진다. 줄거리 설명을 읽고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꿈에 나타날까 무섭다는 사람이라면 굳이 읽기에 도전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꿈에서 저런 상황이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혼자 귓불을 붉히는 사람에게는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