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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2013년 한국영화, 기대해도 좋습니다
문석 2013-01-07

새로 옮긴 사무실에는 꽤 너른 테라스가 딸려 있는데, 추운 기온에 눈이 온통 얼어붙어 창밖으로 보면 극지방에 있는 것 같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테라스로 나서면 남극 탐험대원이 된 기분마저 든다. 그럴 정도로 한파에 시달리다 보니 기온이 조금이나마 올라가거나 칼바람이 고개를 약간 숙이기만 해도 따뜻하다, 살 만하다 따위의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기상청 앱은 여전히 ‘현재기온 영하 8도’를 가리키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 스스로를 보면서 사람이란 참 간사한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영하 1도의 날씨에도 추워 죽겠다고 버둥거리던 게 얼마 전인데 이젠 영하 8도에 감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굳이 진화학을 들이밀지 않더라도 거센 환경에 이토록 잘 적응하지 못했다면 인류는 지구상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무서운 생존본능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대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직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분들이 있긴 하지만, 많은 이들이 나름의 복기(復棋)를 통해 대선 국면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는 듯하다. 엊그제의 모임도 그랬다. 그 자리에 현직 국회의원이 있었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여러 사람들이 12월19일 이후로 한번도 입밖에 내지 않았던 단어들- 이를테면 ‘박근혜’, ‘문재인’, ‘패배’, ‘극복’, ‘차기’, 그리고 궁극의 단어 ‘5년’- 을 뱉으며 나름 열띤 토론을 펼쳤다. 분위기가 어찌나 과열됐던지 레스토랑 종업원이 (개그맨 김기리가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하듯) “저기, 좀 조용히 해주시겠습니까”라고 했을 정도였다. 시간이 더 지나면 마치 내일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비관적이었던 이들도 새 시대에 걸맞은 새 희망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일 것이다.

지난주에 이어 우리는 한국 영화계에서 보이는 한 움큼의 희망을 여러분께 드러내 보이려 한다. 2013년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15명의 감독과 그들의 프로젝트에 관한 특집기사가 그것이다. 영화 관계자들이 가장 기대하는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를 비롯해 10년 만에 귀환하는 장준환 감독의 <화이>,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김혜수 등 쟁쟁한 배우가 등장하는 한재림 감독의 <관상>, 지난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로 한방을 보여줬던 윤종빈 감독의 <군도> 등 올해 극장가를 호령할 한국영화의 면면을 보면서 약간이나마 위안을 얻으시기 바란다.

이렇게 라인업을 펼쳐놓으니 올해 한국영화의 기운은 1억 관객을 동원한 지난해보다도 힘차 보인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현실을 극복하려는 감독들의 예술적 의지가 강해진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맞다면 MB시대 끝자락에서 출발한 2013년의 신작은 질적으로도 뛰어날 것이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당선인의 인사 행태와 성호 스님 같은 양반들의 작태로 미뤄볼 때 박근혜 정부 1년이 지난 2014년에도 한국영화의 기운은 사그라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게 정말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