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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안현진(LA 통신원) 2013-01-10

LA에서 공개한 쓰나미 소재의 <더 임파서블> 나오미 왓츠, 이완 맥그리거,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인터뷰

공포영화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을 만든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이 5년 만에 두 번째 영화를 내놓았다. 2004년 타이, 스리랑카, 몰디브, 인도네시아 등을 덮쳐 15만명 이상의 피해자를 낸 인도양 쓰나미를 소재로 해 만든 <더 임파서블>은, 8년 전 타이 카오락의 리조트로 크리스마스 휴일을 보내기 위해 떠났던 스페인인 벨론 가족이 겪은 실제 경험담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다. 제작 준비에만 2년 넘게 걸린 탓에 데뷔작으로부터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두 번째 영화를 발표했지만, 바요나 감독은 <더 임파서블>로 이른바 소포모어 징크스를 깬 것은 물론이고, 전작인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이 스페인 안에서 세운 450만 관객동원 기록 역시 가뿐히 넘어섰다.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더 임파서블>은 스페인에서 개봉(2012년 10월11일) 첫주 4일 동안 1160만달러를 벌어들였고, 12월21일까지 5200만달러의 극장수입을 기록했다. 이는 4700만 스페인 인구 중에서 600만명 이상이 이 영화를 보았다는 의미다.

CG 없이 창조해낸 해일

<더 임파서블>은 망망대해를 스크린 가득 담으며 시작한다.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이라기보다는 발 디딜 곳이 없어서 불안한 기분이 먼저 느껴질 즈음 찢어질 듯한 굉음이 들려온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베넷 가족을 실은 비행기의 엔진 소리다. 일본에서 일하는 헨리(이완 맥그리거)와 마리아(나오미 왓츠) 부부는 아들 루카스(톰 홀랜드), 사이먼, 토머스를 데리고 크리스마스 연휴를 즐기러 타이로 향하는 중이다. 기류에 기체가 흔들릴 때마다 마리아는 안전벨트를 확인하며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지만 가족은 안전하게 리조트에 도착하고, 촛불을 켠 해변에서의 저녁식사, 밤하늘로 등불을 띄워올리는 새해맞이 이벤트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길지 않다. 크리스마스를 보낸 다음날, 해변 가까이에 자리한 수영장에서 한가롭게 물놀이를 즐기던 가족은 30m 높이의 거대한 해일이 밀려드는 것을 발견하지만 피할 사이도 없이 급류에 휘말린다.

영화는 그 뒤 약 10분간을 성난 자연 앞에 휘둘리는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그리는 데 할애한다. 본래의 푸른빛을 잃어버린 물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품고 소용돌이친다. 꺾인 야자수, 부서진 벤치, 침대 매트리스, 자동차 할 것 없이 실어나르는 물살 속에서 간신히 나무를 잡고 정신을 차린 마리아는 큰아들 루카스가 떠내려가는 걸 발견하고는 다시금 급류에 몸을 맡긴다. 멈추어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 기민한 관객이라면 첫 장면에서의 비행기 엔진 소리 때와 해일장면에서의 사운드가 과장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바요나 감독은 “생각할 틈없이 본능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생존의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 관객의 감각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고, 과장된 사운드와 생생한 시각효과는 그를 위해 연출되었다고 설명했다.

“CGI를 쓰지 않겠다는 결정은 비교적 초반에 이루어졌다.” 영화 제작이 결정된 뒤 제작진은 2년의 준비기간 중 1년 이상을 해일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CGI라는 비교적 편리한 현대의 기술 대신에 1/3 축척으로 세트를 지어 그 위로 매일 13만 리터 이상의 물을 쏟아붓기로 결정한 것은 경제적인 선택이기도 했지만 “CGI로 만든 물은 현실감이 부족하다”는 명쾌한 이유에서였다. 이 결정으로 나오미 왓츠와 톰 홀랜드는 스페인의 스튜디오에 지어진 15미터 길이의 수로에서 물살에 휘말리는 장면을 몇번이나 촬영하는 어려움을 겪었고, 해일이 잠잠해진 뒤의 모습을 재연하기 위해 카오락에는 축구장 여덟개 크기의 세트를 짓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제작진의 고집은 스크린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해일이 닥쳐온 뒤 10분 동안의 물살도 진짜 같지만, 해일이 잠잠해진 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폐허가 된 해변은 최근 뉴스 영상을 통해서 만났던 어떤 재난현장보다도 마음을 뒤흔든다.

거대한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

이후 영화는 마리아와 루카스, 헨리와 어린 두 아들을 나누어 보여주며 생사를 모르는 가운데 막막한 심정으로 구조를 기다리고 서로를 찾아 헤매는 가족의 여정에 집중한다. 타이에서만 9천명 이상의 희생자가 나왔고 그중 1천여명이 유럽인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더 임파서블>이 설정한 “중산층 백인 가족의 이야기”는 세계시장을 노린 할리우드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영화적 선택이 불러온 논쟁과는 별개로 한 가족에게 플롯을 집중함으로써 영화는 효과적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재난영화가 재난을 마주한 다양한 인간군상을 나열함으로써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뿔뿔이 내던져져 애타게 서로를 찾는 가족을 가운데 놓고, 다친 엄마 곁에서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아이의 시선으로 장면을 전개하는 등 바요나 감독은 능수능란하게 관객의 감정을 영화에 이입시킨다. 또한 아주 사소한 순간을 통해 희생과 협동의 휴머니즘을 전달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특히 마음을 빼앗기기 쉬운 부분은 마리아 곁에서 그녀를 돌보는 아들 루카스가 나오는 장면이다. 사춘기의 문턱을 아직 넘지 않은 소년 배우 톰 홀랜드는 백인 위주로 그려진 이 영화를 불편하게 느낀 관객의 마음까지도 녹여낼 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실화에 근거함을 오프닝에서부터 밝히고 시작하는 여느 영화들과 다르게 <더 임파서블>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실화의 주인공들을 사진으로 소개한다. 다소 할리우드적인 엔딩이 아닐까 생각한 관객에게 제시하는 친절한 설명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화임을 모르고 보더라도 영화는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다. 사람의 손으로 재현한 거대한 규모의 자연과 그 앞에서 무력한 인간을 에두름 없이 묘사해낸 덕분이다. 2012년 12월8일, <더 임파서블>의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과 주연을 맡은 두 배우 나오미 왓츠와 이완 맥그리거를 만났다. 세 사람 모두 <더 임파서블> 앞에 붙은 “재난영화”라는 수식을 달갑지 않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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