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는 성유리가 2년 전에 찍은 저예산영화다. 매니지먼트사의 만류를 무릅쓰고 출연했다. 해사한 얼굴을 클로즈업한 포스터만 놓고 보면 고만고만한 성장영화 같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동생의 죽음을 제 탓으로 여기는 극중 윤희는 아버지의 매질을 당연한 형벌로 받아들인다. 눈두덩은 항상 멍이 들어 있고, 입가는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다. 아프지만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윤희를 세상은 동정하는 대신 경멸한다. 유쾌하고 씩씩한 캐릭터가 더 어울릴 법한 성유리는 왜 굳이 고행을 자처한 것일까.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 성유리에게 드라마가 주어진 경로였다면, 영화는 찾아야 할 돌파구인지 모른다. 그녀 역시 의외의 선택을 “고심의 결과”라고 말했다.
-드라마 <신들의 만찬>(2012)을 끝내고 어떻게 지냈나. =여행 겸해서 홍콩에 화보촬영하러 다녀왔다. 2년 동안 거의 쉬지 못했다. 요즘은 필라테스와 발레를 접목한 자이로토닉을 하면서 체력을 보강하고 있다. 자이로토닉은 척추비대칭 치료를 위해 예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런데 쉬는 동안 살이 너무 많이 쪄서 안 할 수가 없더라. 안 하던 운동을 집중적으로 했더니 여기저기 온몸이 다 쑤신다.
-몸이 좋지 않으면 드라마 촬영 때도 매번 고생했겠다. 밤샘 촬영이 잦으니까. =촬영장에서 틈만 나면 어깨를 주무르고 있어서 다들 ‘척추공주’, ‘할머니’라고 불렀다. (웃음)
-<누나>는 2010년에 촬영한 영화다. 개봉까지 2년 넘게 걸렸다. =그러게. 영화 찍고 군대 간 주승이가 벌써 제대했으니까. 편집 작업할 때 감독님을 졸라서 가편집본을 봤고, (2011년 가을에 열렸던) 서울기독교영화제에서도 완성본을 봤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라서 어떻게 나올까 마음을 졸였는데 결과물을 보니 비교적 만족스럽더라. 조명도 없이 촬영하던 때도 있어서 과연 이 영화가 제대로 완성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누나>에 참여한 건 의지였나, 권유였나. =주변에서 다 반대했다. 회사를 옮기고 나서 <누나>가 첫 작품이었다. 저예산영화에 노개런티로 출연하는 데다 완성 여부마저 불확실한 영화였으니.
-그런데도 고집을 꺾지 않은 건 무슨 이유에서였나. =시나리오가 전하는 메시지가 좋았다. 치유에 관한 이야기이고, 실제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힐링이 되는 느낌도 들었다. 이전에 내가 맡았던 캐릭터들은 역경 속에서도 밝고 당찬, 캔디 같은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저런 시련을 겪고도 저렇게 살아가나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인물들이었다. 반면 윤희는 상처받은 채로 살아가는 친구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었다.
-<토끼와 리저드> <누나>보다 <차형사>(2012)가 데뷔작으로는 더 편하고 안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토끼와 리저드>를 찍은 뒤 주위에서 “너랑 안 맞는다”라고 하더라. 명랑한 게 장점인데, 그걸 빼고 나니까 새롭긴 해도 매력이 없다면서. 이미지 변신 역시 자연스러워야 한다고도 했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외려 어두운 성격의 인물을 잘할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다. <누나>는 당시로선 개봉 여부가 불확실해서 나 자신을 마음껏 테스트하기엔 좋은 기회였다.
-이원식 감독이 혹시 팬이어서 캐스팅했다고 하진 않던가. =나 말고 이진 언니를 좋아한다. (웃음) 처음엔 나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쓴 줄 알았다. 얼마 전에 내가 꿈에 몇번 나와서 시나리오를 줬다고 하긴 했지만.
-첫 촬영 분위기를 기억하나. =감독님이랑 스탭들이랑 촬영 전에 원 모양으로 빙 둘러서서 기도를 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좋은 영화 한번 만들어보자는 간절함으로 시작했는데, 회차가 거듭될수록 힘이 빠지더라. 제작비 문제로 촬영이 중단됐고, 한달이면 끝날 촬영이 서너달로 늘어났다. 그러는 동안 스탭들은 계속 빠져나갔다. 심지어 촬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인원이 부족한 날도 있었다. 촬영감독님도 수시로 바뀌었다. 아마 감독님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여기서도 우는소리, 저기서도 우는소리였으니까.
-배우로선 최악의 여건이었는데. 중도 하차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촬영이 지체되면서 나도 인간인지라 불만이 생기더라. 어떻게 할 수 없는 매니저한테 자꾸 없는 걸 내놓으라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매니저 입장에선 그랬을 거다. ‘거 봐 하지 말랬잖아, 이럴 거면 왜 했어?’ (웃음) 촬영이 중단된 뒤로는 촬영장에 다시 가기 싫었고, 후회도 많이 했다. 그런데 공백이 길어지면서 이러다 영화를 못 만들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조바심이 났고, 인물에 대한 애착이나 영화에 대한 열정도 다시 생겨났다.
-상처를 지닌 인물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세상과 교감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 구조만 놓고 보면 <토끼와 리저드>와 <누나>가 유사하다. =<토끼와 리저드>의 메이는 자신을 버림받은, 피해자라고 여긴다. 반면, <누나>의 윤희는 자신이 동생을 죽인, 가해자라고 생각한다. 세상과 단절된,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어두운 인물이라는 점은 같지만 메이는 어느 순간 감정을 폭발하는 반면 윤희는 그런 순간조차 ‘내가 죄인인데 어떻게 내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며 물러서는 인물이다. 더 억압된 캐릭터였고, 그래서 더 연기하기가 힘들었다. 윤희가 아무도 모르게 소리 지르는 장면에선 내 마음까지 후련했다.
-진호 역의 이주승과는 8살 차이인데. 살갑게 지냈나. =처음에는 일부러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니까 갑자기 친해지기 어색한 상황이 됐다. 주승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둘 다 쑥스러움을 많이 탄다. 게다가 주승이가 나이나 외모나 한참 어린 동생인데도 카리스마가 있다. 이 친구한테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극중 윤희와 같은 마음이었다. ‘밥 먹었어?’ 하면 ‘네’ 하는데, 그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나중에 촬영이 끝난 뒤에야 친해졌다. (웃음) 윤희를 위해 만들어놓은 설정 때문에 실제로 내가 촬영장에서 점점 고립됐던 것 같다.
-진호가 다니는 학교의 급식소에서 일할 때 윤희의 얼굴에 맺힌 땀은 분장이 아닌 것 같던데. =에어컨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올 정도로 촬영장이 더웠다. 고무장갑 끼고 바람 안 통하는 앞치마 입고 거기에 고무장화까지 신고 탕수육을 튀겨야 했으니까. 얼굴이 발갛게 익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땀을 휴지로 닦아보기도 했는데 나중엔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학생들에게 급식 먹을 때는 항상 감사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윤희의 얼굴은 언제나 멍투성이다. 아버지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반복돼 보여지는데. =겁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냥 찍지 뭐 그러고 촬영장에 갔다. 그런데 아버지 역을 맡은 선생님이 연극을 많이 하신 분이라서 리얼리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처음에 몇대 맞고 나니까 장난이 아니구나 싶더라. 액션장면을 좀 미뤄달라고 부탁한 뒤 클로즈업이나 바스트 숏 촬영이 아닌 장면에선 대역을 써달라고 감독님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대역할 연기자가 왔는데 남자가 아니라 여릿여릿한 여자분이 오셨다. 보호대까지 빼고 연기하는 걸 볼 때는 온갖 생각이 스쳤다. 윤희를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게 처음엔 신기했는데, 남이 대신 맞을 때는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아픈 건 아픈 것도 아니구나. 촬영이 끝난 뒤엔 자존심까지 상하더라.
-핑클 활동 시절 <긴급조치 19호>(2002)에 잠깐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영화를 찍는 줄도 몰랐다. 스케줄이 너무 많았으니까. 시골에 갔는데 (제작진이) 쪽지 받은 대로 대사를 해달라고 했다. 예능하듯이 영화를 찍었다. 그게 내 데뷔작이 될 줄이야. (웃음)
-연기로 선회한 지 10년이다. 처음엔 연기를 (소속사에서) 떠밀어서 시작했다고 들었다. =첫 작품(SBS 드라마 <나쁜 여자들>)을 할 때는 좋았다. 감독님도 딸뻘인 아이가 와서 열심히 하니까 잘했다 잘했다 하시고. 속으로 연기 별거 아니네 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달라졌다. ‘쟤는 뭔데, 갑자기 주연으로 뚝 떨어져서’라고들 하셨다. 엄청 많이 혼났다. 나만 딴 세상에서 온 것 같았다. 촬영장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안되면 다 내 책임 같고. 3년 전에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연기를 진짜 좋아하게 됐다”고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말도 거짓말 같다. 촬영장이 내 집 같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니까. 그래도 신기한 건 연기를 안 하면 하고 싶어진다는 거다. 려원이랑 이진 언니랑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항상 똑같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가늘고 길게 가자고.
-앞으로의 10년을 위해선 지난 10년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어느 시점에 진짜 배우는 알을 깨고 나온다.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의 박시후씨를 보면 ‘아 깨고 나왔구나’ 싶다. 난 아직 그러지 못했다. 작품 할 때마다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포기는 안 한다. 내가 불이 좀 늦게 붙는 편이다. 몇년 전에 줄리엣 비노쉬의 무용 공연 <인 아이>(in-i)를 본 적 있다. 연극인 줄 알고 갔는데 대사 한마디 없는 무용 공연이었다. 그런데 줄리엣 비노쉬의 몸짓 하나하나가 대사였다. 그 몸짓에 소름이 끼쳤고, 눈물이 났다.
-<성유리의 론치 마이 라이프>(2011)에서 버킷리스트를 공개하고 실행에 옮겼다. 더 해보고 싶은 게 있나. =외국에 나가 학교를 다니고 싶다. 가능하다면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 결혼해서 아이 낳은 친구들 보면 아이들의 심리를 몰라서 애먹는 경우가 많더라. <케빈에 대하여>를 보면서 아동심리학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맘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