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12월29일까지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문의: 1688-5966
우리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자체로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하나의 대명사이다. 극중 로미오와 줄리엣이 어떻게 만나서 사랑하고 죽음에 이르는지 이미 너무나 잘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이 작품을 보고 또 보며 첫 키스의 숨막힐 듯한 희열과 가슴 아픈 이별, 그리고 죽음으로 완성한 영원한 사랑에 가슴 설레고 또 마음 졸인다. 올겨울, 국립극장에서는 조금 색다른 스타일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날 수 있다. 현대 중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여류 연출가 티엔친신이 연출을 맡고, 전미도, 강필석, 김세동, 고수희, 박완규, 장성익 등 연극과 뮤지컬계를 오가며 활동 중인 한국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국립극단의 ‘청춘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사랑이 1968년,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공련파와 군인 세력인 전사파로 나뉘어 대립 중인 홍위병들, 그 치열한 반목 속에서 피어난 두 청춘남녀의 사랑과 비극이 혼란한 사회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사실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원하고, 그것을 위해 온몸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혁명의 열기와 사랑의 열정은 서로 통하는 점이 많다. 이는 또한 실체가 불확실한 대상에 대한 치기어린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 ‘청춘’의 공통적인 속성이기도 하다. 연출가 티엔친신은 이러한 면에 착안해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단순한 고전의 복원에 그치지 않고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하고 집단적인 열정 속에 펼쳐지는 두 남녀의 아름답고 위태로운 사랑으로 새롭게 그려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는 이러한 연출 컨셉을 매우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무대 전면에는 가만히 서 있기 힘들 만큼 가파른 경사를 지닌 거대한 지붕이 가로놓여 있다. 배우들은 모두 이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노래하고 춤추고, 때로는 사랑을 나누거나 서로를 죽인다. 가파른 경사는 그 자체로 불안하고 위태로운 청춘과 사랑, 혁명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배우들의 뜨거운 에너지는 위험에 대한 무방비 상태에서 마음껏 젊음을 발산하는 청춘의 열기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뮤지컬 <닥터 지바고> <번지점프를 하다>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전미도와 강필석은 첫 만남과 발코니 신(이 공연에서는 지붕 위 창문 신), 마지막 영안실 장면 등에서 놀랄 만큼 밀도있는 감정을 보여준다. 또 고수희•김세동•박완규•장성익 등 노련한 중견배우들의 안정적인 앙상블과 홍위병 역의 신인배우들의 젊고 신선한 에너지가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작품의 대립적인 요소들을 더욱 생생히 살려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