퀭한 눈의 좀비로 새벽녘까지 대통령 당선인의 ‘인생역정’을 보았다. 한 인간의 집념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20여년 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만 해도 그녀는 과거의 슬픔과 배신과 고통에 몸을 떨며 그것을 가까스로 견뎌내고 있는 ‘비운의 영애’였다. 수년 뒤 1997년 이회창 대선 후보 지원 연설을 시작으로 정치에 몸을 담고 이듬해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그 뒤로는 망설임없이 흔들림없이 (코)앞만 보고 달렸다. 15년 뒤 대통령이 되었다.
그녀가 지닌 여러 자산 중 가장 높이 쳐주고 싶은 것은 특유의 ‘곤조’이다. 인정에 휘둘리지 않고 비난이든 아부든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쉽게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 뼈를 깎듯 절치부심의 시간을 보낸 결과이지 싶다. 그것이 종종 불통과 철벽으로 작동하기도 하지만, 나는 ‘어떤 진심’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곤조’는 인정하지만 그 안에 담길 ‘개념’과 ‘물정’에 대해서는 불안하고 의심스럽다. 그녀를 둘러싸고 밀어올린 세력들이 마땅치 않기도 하거니와, 밑천과 내공이 드러나는 텔레비전 토론에서 자기 정책과 공약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손맛과 조리기구가 좋아도 재료가 부실하면 좋은 요리가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에 그녀의 한계와 가능성이 동시에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결단은 빌릴 수가 없다.
YS만큼만 했으면 좋겠다.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세력에 대해 가차없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철권이 아닌 철법통치 말이다. 과거의 청산대상이 군부였다면 오늘의 청산대상은 국민을 협박하고 사리사욕을 채워온 특권세력과 그 마름들이다. 범죄를 저지른 이는 전임 대통령이라도 죗값을 치러야 한다. 국록을 먹으며 국물도 챙기려는 자들, 불로소득자들, 재벌 총수 일가와 대기업 집단, 대통령 주변, 검찰 등이 떠오른다. 그들은 특히 지난 5년 동안 신호등도 브레이크도 없이 지나치게 질주했다. 저질로 찍힌 언론은, 낙하산만 안 내려보내도 된다. 법대로.
동토의 왕국이 될 것인가 선군의 시대가 될 것인가. 둘 다 시대착오적일지언정 후자쪽을 간절히 바란다. 털어야 할 먼지라면 털고 거쳐야 할 시대라면 거쳐야 하는 거니까. 이상, 급 샤머니즘 신봉자가 된 이의 자체 힐링 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