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영원하다는데 요즘은 인스턴트뿐이다. (관객으로서) 내가 보고 싶은 영화 중 영원한 사랑을 믿는 남자를 기다리는 여성의 이야기가 있었으면 싶었다.” 12월11일 현재 682만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확장판 포함한 관객수)을 동원하면서 7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늑대소년>은 제작사 비단길 김수진 대표의 ‘사심’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인터뷰 내내 영화를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는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창립작인 <음란서생> 이후 <추격자> <작전>으로 승승장구하다 지난해 <혈투>가 흥행 실패한 뒤 곧바로 <늑대소년>으로 흥행에 성공한 김수진 대표를 만났다. 영하 13도라는 유독 추웠던 날씨도 직구 스타일인 그의 화법을 막진 못했다.
-비단길 최고의 흥행작이다. 예상은 했나. =못했지. 잘될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확신이라면. =여성 관객이 많이 좋아할 것 같은 이야기였고. 이런 소재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독창적인 이야기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영화의 확장판 재개봉(<늑대소년> 확장판은 12월6일 개봉했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데. =어떻게해도 그런 얘기는 나올 것 같았다. 개봉작도 감독 버전이긴 한데 관객이 SNS와 인터넷을 통해 (재개봉을) 요구한 거다. 다른 엔딩을 보여달라고.
-원래는 늑대소녀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지난해 3월 기획회의를 하던 중 조성희 감독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들어보자 했는데 그게 야생에서 자란 소녀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녀보다는 소년이 더 괜찮겠다 싶었다. 소녀는 야생성이 없으니까. 나의 로망과 사심을 담아 아이디어 몇개를 가이드라인으로 냈는데, 조성희 감독이 시나리오를 너무 잘 써왔다.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2009)을 보면서 ‘마’(대사나 장면 사이에 어떤 정적이 흐를 때 ‘마가 뜬다’라는 표현을 쓴다)를 잘 활용한다고 했는데.” =‘마’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잘 표현하더라. 그 솜씨를 보면서 이 감독은 어떤 장르의 영화를 만들더라도 잘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야기의 독창성 역시 뛰어났고. 그래서 욕심이 났다. 감독의 전작 <짐승의 끝>(2011)이 끝나자마자 장편을 함께 준비하자고 했다.
-투자와 배급을 한 CJ엔터테인먼트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시나리오와 감독만 보고 선뜻 투자 결정을 했다고 하더라. =매 작품이 시나리오만으로 투자가 결정됐다. 캐스팅을 가지고 가서 투자가 된다, 안된다 했던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투자자 입장에서는 조성희라는 신인감독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을 텐데. =지난해 4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CJ엔터테인먼트 투자팀 장진승 팀장이 밤늦게 빈소를 찾았다. 그날 밤 장 팀장이 조성희 감독과 함께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그 때 CJ 투자팀이 조성희 감독을 완전히 파악한 것 같았다. 그로부터 한달이 지난 뒤 CJ에 <늑대소년> 초고를 보냈는데, 장 팀장이 바로 하겠다고 하더라.
-송중기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주인공을 맡을 20대 초반의 남녀배우를 찾아야 했는데 그 나이대에 해당되는 배우군이 되게 작다. 남자는 김수현, 송중기, 여자는 박보영 정도였다. 그래서 (송)중기씨한테 제일 먼저 책을 줬는데 중기씨가 다른 영화를 준비 중이라며 2, 3주 동안 연락이 없었다.
-매니저들 사이에서 적역으로 정한 배우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 스타일로 유명하더라. 1순위 캐스팅이 안되면 2, 3순위로 내려가는 게 보통인데. =정말 유명한 배우가 하면 좋겠지만 적역이 하는 게 그보다 먼저라고 생각한다.
-송중기의 어떤 점이 적역이라고 판단했나. =20대 초반의 남자 배우 중 소년과 남자 이미지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했다. 늑대소년이기에 얼굴이 깔끔하고, 잘생겨야 시너지가 날 것 같았고. LG전자의 광고를 보면서 중기씨 얼굴이 너무 예쁘더라. 야생에서 건져올렸다고 해도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얼굴이었다. 연기력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이미 입증됐고. 나중에 중기씨가 출연을 결정했을 때 <뿌리 깊은 나무>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그 드라마를 보니 연기를 정말 무시무시하게 하더라.
-얘기만 들어보면 기획/개발부터 캐스팅 그리고 프로덕션까지 별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투자사가 딱 한번 현장을 찾았다. 현장만 보고 너무 자신있어 하더라. 기분이 좋았다. 투자사가 자신있어 하니까. 보통 우리가 투자사를 설득해야 되잖아. 이 영화는 그런 게 별로 없었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잘 썼고, 현장에서도 큰 소리 하나 없었고. 영화가 끝나고 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면 1년에 몇편씩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나홍진 감독과 수없이 충돌했던 <추격자>와 반대네. =완전 반대! (일동 폭소) 극과 극이지. 두 영화 모두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 열정에 대한 반응이 각기 다른 것뿐이다.
-제작의 전 공정이 분위기가 좋았다고는 하나 개봉하기 전까지는 나름 걱정했을 것 같다. =개봉하기 전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반응이 좋아서 큰 걱정은 안 했던 것 같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때 좌석을 가득 채운 관객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을 보면서 잘되겠다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언론시사 때 영화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김 기자가 별 두개 반을 준 이유가 궁금하다.
-(같은 축구팀에서 뛰고 있는) 윤성현 감독도 그렇게 물어보더라. =나도 궁금하다. 대체 이유가 뭔가. 빨리 얘기해봐라.
-<남매의 집> <짐승의 끝> 등 감독의 전작을 고려하면 <늑대소년>은 너무나 전형적인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감독의 전작과 비교하면서 그렇게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웃음) 전형적인 동화면 뭐 잘못된 건가. 전세계를 통틀어 <늑대소년> 같은 독창적인 영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비단길을 설립한 뒤 창립작 <음란서생>(전국관객 345만명,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비롯한 <추격자>(500만여명), <작전>(151만여명) 등 만드는 작품마다 승승장구하다가 지난해 <혈투>(4만여명)가 처음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좋은 경험이었다. 어떤 영화사든지 100% 흥행이라는 건 있을 수 없잖나.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고, 겸손해졌다. 흥행작이 100%가 아닌 80%라 참 다행스럽다. 부담도 덜하고. 항상 원칙을 벗어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혈투>는 시작부터 명료하지 않았다. 원칙도 많이 벗어났고. 투자쪽도 문제가 많았고. 그럼에도 박훈정이라는 작가이자 감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건 정말 좋은 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앞으로 영화를 잘 만들 거다.
-나홍진, 이호재, 박훈정, 조성희 등 늘 신인감독과 작업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다른 감독들이 나를 안 고르는 거지. (웃음)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인감독들이 나를 고르는 거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그러게. 운이 없어서?
-그렇다면 질문을 달리 하겠다. 신인감독은 왜 김수진이라는 제작자를 고르는 것일까. =목숨 걸고 열심히 해주니까. 작품을 위해 밖에 나가서 엄청 싸워주니까. 모든 걸 다 방어해주니까. 그런 거 아닐까.
-현재 비단길은 공동 대표 체제다. 윤인범 대표가 투자를 비롯한 자금 관련을, 당신이 시나리오와 감독 관리를 맡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호흡이 잘 맞는다. 윤인범 대표가 나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덕분에 내가 시나리오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영화의 전 공정 중 시나리오 개발이 가장 재미있고 스릴이 넘친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하는 공정이기 때문이다.
-요즘 술은 잘 안 먹는다고. =와인 조금 한다. 사회민주화 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시절 대학을 다녔던 까닭에 예전에는 많이 마셨는데…. 이후 술 마시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추격자> 때부터 몸이 안 좋아지면서 많이 마시진 않는다.
-반면 골프는 열심히 친다던데. 싱글 이상의 실력파라고 들었다. =사무실 한쪽에는 영화하면서 받은 트로피가, 다른 한쪽에는 골프 상패가 있다. (웃음) AFI 유학 시절, 학교에서 10분 거리에 골프장이 6곳이나 있었다. 미국은 라운딩당 6천~8천원 정도로 싸다. 미국 친구들과 놀러나가면서 시작한 골프다. 그때 재미를 붙인 거다.
-골프가 주는 교훈이 있을 것 같다. =사람 마음대로 안되는 게 골프와 영화인 것 같다. (웃음) 덕분에 인내심과 배려심을 키울 수 있었다.
-비단길을 운영하면서 아쉬움은 없었나. =작품을 많이 못했던 게 아쉽다.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마음에 한 작품 진행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여러 편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을 잘 못하기도 하고.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비단길 영화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건 특별히 없다. 웰메이드 영화를 만들고 싶다. 더욱 중요한 건 우리 영화가 사회에 어떤 울림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들이라고. =맞다. 가장 시네마틱한 전율을 주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주말의 명화를 많이 봤다. 의식으로 기억하기로는 엄마, 언니들과 함께 광주제일극장에서 본 <록키>가 첫 극장 관람 경험인 것 같다. 그 영화를 봤을 때 <시네마천국>처럼 내 인생에 송두리째 어떤 환희가 왔던 것 같다.
-현재 기획/개발 중인 프로젝트는 어떤 게 있나. =조성희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어떤 내용의 이야기인지 아직 결정된 바 없다. 분명한 건 <늑대소년>과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될 거라는 거다. 신인감독이 두 번째 영화를 같은 제작사와 함께 작업하는 건 강형철 감독과 조성희 감독밖에 없을 거다. 그건 감독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산업 구조가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네이버 웹툰 <기사도>를 계속 개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