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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라, 우리의 인생을(1)

뮤지컬에서 영화로 다시 태어난 <레미제라블> 뉴욕 현지보고

<I dreamed a dream>을 부른 뮤지컬 배우와 가수들은 수없이 많다. 지난 2009년에는 허름한 차림의 수잔 보일이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놀라울 정도의 맑고 고운 목소리로 이 곡을 불러 사람들에게 이 노래의 매력을 다시 각인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곡의 가사를 잘 들여다본다면 그저 곱고 예쁘게 부를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금세 느끼게 된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에 개봉할(한국 개봉 12월19일) 톰 후퍼 감독의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에서는 판틴 역을 맡은 앤 해서웨이가 <I dreamed a dream>을 부른다. 그녀는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온 여자의 ‘한’을 이 곡으로 절절하게 풀어가는 열연을 선보였다. 지난 5월 공개된 그녀의 목소리가 담긴 예고편 하나만으로도 <레미제라블>은 개봉 전부터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강력한 경쟁작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환호와 박수로 가득한 시사회

이처럼 공개되기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 <레미제라블>이 11월30일 뉴욕 AMC 엠파이어 25 극장에서 언론시사회를 열었다. 기자들과 더불어 일반 관객까지 함께 참석한 이날의 행사는 차분하게 진행되는 보통의 기자시사회와는 사뭇 달랐는데, 2시간40분의 러닝타임 동안 극장은 환호와 박수, 그리고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했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 올해로 27주년을 맞는 동명의 뮤지컬을 통해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임에도 영화 <레미제라블>이 갖는 드라마의 힘은 여전히 강력했다. 여기에는 인간의 삶과 사랑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관객이 공감할 수 있도록 스크린에 옮긴 감독 톰 후퍼의 공이 크다.

영화는 1815년의 프랑스로부터 출발한다. 빵 한 조각을 훔쳤다는 이유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휴 잭맨)은 가석방된다. 하지만 전과경력이 있는 장발장은 막노동은 물론 잠자리조차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이는 오직 한명. 미리엘 주교(콤 윌킨슨)다. 그러나 장발장은 이 은혜를 성당의 은식기를 훔치는 것으로 갚는다. 결국 그는 경찰에 잡혀 성당에 다시 끌려오나, 주교는 장발장의 절도 사실을 숨기는 것은 물론 은촛대까지 쥐어주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라고 말해준다. 이후, 신분을 감추고 시장의 자리까지 오른 장발장은 인자한 성품으로 시민들의 존경을 받지만, 한 공장에서 해고된 여인, 판틴(앤 해서웨이)의 억울함을 그냥 지나친다. 궁지에 내몰린 판틴은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여자로 전락하고, 병에 걸린 그녀는 마지막 순간 장발장에게 딸 코제트(아만다 시프리드)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장발장은 그를 20년 전 죄수로 의심하는 경감 자베르(러셀 크로)를 피해 코제트와 성당에 머문다. 한편, 프랑스에선 평민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대변했던 라마르케 장군의 죽음을 계기로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시민들의 시위가 시작된다. 그 선봉대에 선 마리우스(에디 레드레인)는 장발장의 딸 코제트를 우연히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런 마리우스의 곁을 그를 짝사랑하는 여인 에포닌(사만다 뱅크스, 코제트가 어린 시절 묵었던 여관 주인의 딸)이 맴돈다.

라이브로 감정을 전달하다

영화 <레미제라블>이 여타의 뮤지컬영화와 차별화되는 점은 배우들이 뮤지컬 넘버를 사전녹음하지 않고 라이브로 노래하는 ‘송 스루’(song through)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배우들이 사전에 녹음한 노래에 맞춰 연기하면 그 순간의 감정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한 톰 후퍼는 배우들에게 현장에서 뮤지션들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연기하듯 노래하도록 했다. 이러한 연출 방식이 영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뮤지컬 음악의 매력이 순간의 감정 전달이라면, <레미제라블>의 ‘송 스루’ 스타일은 현장에서 배우들이 몰입했을 바로 그 순간의 감정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특히 장발장이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며 부르는 <What I have done>, 매춘부로 전락한 판틴의 <I dreamed a dream>, 코제트와 사랑에 빠진 마리우스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에포닌의 <On my own>이 흐르는 대목 등이 인상적이다.

뮤지컬이 아니라 오직 영화에서만 가능한 장면을 보여주고 싶은 야심도 엿보인다. 이 작품에는 유독 배우들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비추는 장면들이 많다. 뮤지컬이 먼 객석의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 큰 동작과 과장된 연기,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승부한다면, 영화 <레미제라블>은 등장인물의 작은 동작 하나, 눈물 한 방울로부터 극의 정서를 이끌어내려 한다. 세월을 눈가에 아로새긴 장발장의 얼굴, 모든 것을 다 잃은 판틴의 공허한 표정은 뮤지컬 작품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을 영화만의 전유물이다.

오스카를 거머쥘 유력 후보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공은 굴곡 많은 캐릭터의 무게를 감내하면서 음악과 연기까지 신경써야 했을 배우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레미제라블>의 출연진 리스트에는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 등의 할리우드 A급 스타진과 사만다 뱅크스, 콤 윌킨슨과 같은 런던 웨스트엔드, 미국 브로드웨이 등지의 저명한 뮤지컬 배우들이 함께 섞여 있다. 시사회 다음날인 12월1일, 뉴욕에 위치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휴 잭맨과 앤 해서웨이, 아만다 시프리드와 에디 레드메인, 사만다 뱅크스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특히 톰 후퍼가 “캐스팅에 필요한 교과서적인 존재”라고 말했다던 장발장 역의 휴 잭맨에 대해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배우들은 경의를 표했다. 앤 해서웨이는 그를 두고 “자신이 아는 가장 강인한 사람”, “작품에 자신의 1000%를 넣으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여유와 자상함이 있는 배우라고 말했다. 휴 잭맨과 부녀지간으로 출연한 아만다 시프리드는 “마치 구름 위에서 태어난 사람 같더라. 모든 사람들이 동등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사명을 가지고 지구에 온 것 같다”며 휴 잭맨과 장발장의 공통점을 말했다. 그들의 말대로 한 인간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풍부한 감성으로 표현해낸 장발장 역의 휴 잭맨은 판틴 역의 앤 해서웨이와 더불어 2013년 오스카 주연배우 부문의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로 점쳐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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