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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 판권 시장의 부활 견인차
김성훈 2012-12-18

급격히 늘어난 IPTV, 디지털케이블TV 사용자와 VOD 시장의 상관관계

빠름. 빠름. 빠름. 모 통신사 광고 얘기가 아니다. 극장 상영작이 VOD 서비스를 통해 IPTV(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해 제공되는 쌍방향 텔레비전 서비스. 시청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다.)나 웹하드에 선보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극장 상영이 거의 끝날 무렵 IPTV에 개봉하거나 극장과 IPTV에서 동시상영하는 건 기본이다. 아예 IPTV에서만 단독으로 개봉하는 영화도 있다(<피쉬 탱크>는 9월21일 LG유플러스TV에서 단독개봉했다). 물론 스크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보고 싶은 영화를 극장에서 놓치더라도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된다. 불법 다운로드를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리모컨 하나면 안방에서 원하는 영화를 선택해 감상할 수 있는 시대다. 극장 개봉작이든, 철이 지난 영화든,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은 영화든.

올해 11월 기준으로 IPTV 가입자 수가 600만명을 넘어섰다. KT의 올레TV가 약 365만명으로 가장 많다. SK브로드밴드의 BTV가 약 135만명, LG유플러스의 유플러스TV가 약 102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해 KT를 뒤쫓고 있다. 디지털케이블TV(사업자의 단말기를 통해 방송을 전송받는 서비스. 쉽게 말해서 지역 케이블방송이 여기에 해당된다.) 가입자 수는 올해 7월 기준으로 467만명 정도다. 그러니까 IPTV 가입자 수와 디지털케이블TV 가입자 수를 합친 1천여 만 명은 VOD 시청이 가능한 숫자다. 지난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표된 자료 ‘IPTV/디지털 케이블TV 연도별 가입자 현황’에 따르면, IPTV를 비롯한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국내 유료방송 가입자 수는 총 2200만명에 이른다. 그중 절반 정도가 VOD 시청이 가능하다는 소리니까 이건 어마어마한 숫자다. 매출액 역시 큰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IPTV와 디지털케이블TV의 영화 총매출액은 1014억원 정도(IPTV의 영화 매출액은 760억원, 디지털케이블TV의 영화 매출액은 254억원이다)로, 2010년의 213억원에 비해 무려 476%나 증가했다. 올해는 상반기까지 726억원을 기록했다고 하니 연말쯤에는 지난해의 매출액을 가뿐히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IPTV 가입자 수가 늘어나는 속도도 무시무시하다. 위성방송이 가입자 수 300만명 돌파하는 데 9년, 케이블TV가 400만명 돌파하는 데 6년 걸린 반면 IPTV는 4년 만에 600만명을 돌파했다. IPTV의 성장이 VOD 시장을, 2000년대 초 몰락한 2차 부가판권시장을 다시 부활시키고 있다.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따른 VOD 시장 성장

많은 사람들이 VOD를 통해 영화를 보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달리 던져보자. 어떤 사람들이 VOD를 통해 영화를 보는 것일까. 올레TV, BTV, 유플러스TV 등 IPTV 3사 관계자는 “30, 40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그 연령대는 편당 3500~4천원쯤은 큰 고민없이 지출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리모컨 버튼 몇번만 누르면 영화가 상영되는 IPTV의 시스템만큼 그들에게 편리한 도구도 없을 것이다. BTV 정소연 매니저는 “IPTV가 처음 선보였던 2009년 초, 이들은 성인 콘텐츠 위주로 VOD 서비스를 소비했다”며 “2011년 ‘극장 동시개봉관’이 신설되면서 <방자전> <완벽한 파트너> <후궁: 제왕의 첩> 등 노출 수위가 높은 한국영화를 애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가 개봉영화의 IPTV 상영기간이 점점 짧아지게 됐고, 그들은 극장 대신(혹은 극장을 찾지 못한 날에는) IPTV를 통해 가족과 함께 영화를 감상하게 됐다. TV를 통해 원하는 영화를 편리한 시간대에 소비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이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됐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런데 그게 PC를 통해 원하는 영화를 불법 다운로드해서 보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원리가 비슷해 보이긴 하나 TV와 PC에는 큰 차이가 있다. PC는 매체의 특성상 영화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쇼핑, 이메일 등 ‘딴짓’ 할 게 많기 때문이다. 반면 TV는 감상을 전제로 한 매체이기 때문에 PC에 비해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국내진흥팀 김현정 과장은 “포털 사이트쪽에서 정확한 매출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같은 영화라도 네이버, 다음의 VOD 다운로드 매출액이 IPTV의 그것에 비해 훨씬 적은 이유가 PC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콘텐츠를 합법적으로 거래하는 영화산업의 분위기 역시 IPTV의 성장에 한몫했다. 올레TV 권용백 과장은 “최근 정부가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인 것이 시장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며 “특히 합법 다운로드 캠페인 덕분에 소비자들이 영화는 당연히 돈을 주고 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콘텐츠 구매가 한국 소비자들에게 익숙해졌다는 말이다. TV를 통한 영화 감상이라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 적게는 3500원, 많게는 1만원이라는 금액을 영화 감상에 지불하는 소비자의 소비 트렌드 변화, 그리고 불법 다운로드를 규제하는 정부와 업계의 노력 등 여러 요인이 맞물린 결과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엄청난 수치의 반영이다.

온라인상영관 통합전산망이 시급하다

IPTV를 비롯한 VOD 시장은 장밋빛 미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긴 하다. IPTV 3사, 네이버와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는 정확한 매출액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매달 정산할 때 수입사는 “해당 영화가 한달 동안 총 얼마의 매출을 올렸는지, 정산된 금액이 과연 제대로 배분된 건지 알기 어렵”다. 수입사의 한 관계자는 “극장 개봉작에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있듯이 디지털 온라인 시장에서도 매일 매출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행스러운 건 얼마 전 올레TV, BTV, 유플러스TV 등 IPTV 3사가 매출액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3사는 영진위와 함께 “IPTV, 디지털케이블TV 사업자와 문화부, 영진위가 참여하는 ‘온라인상영관 통합전산망 구축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고 한다. 영진위 김현정 과장은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때는 극장을 설득하는 데 10년이 넘게 걸린 반면 IPTV 사업자 모두 전산망의 필요성을 공감했다는 게 의미있다”며 “온라인상영관 통합전산망 시스템은 시스템대로 준비하되 당장 내년부터 IPTV 3사 홈페이지, 영진위 홈페이지, 별도의 보도 자료를 통해 매출액을 공개할 것”이라고 전했다. 영진위가 이 사업에 적극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부가판권시장이 몰락한 이후 한국 영화산업의 구조는 전적으로 극장 매출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형태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의 부가판권시장의 성장은 한국 영화산업의 매출 구조는 물론이고 체질 개선에까지 긍정적 변화를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의 빛을 던져준다. 온라인상영관 통합전산망 구축의 관건은 역시 예산이다. 김현정 과장은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비용은 내년 영진위 예산으로부터 확보할 계획”이라며 “일단 BK 사업에 21억원을 신청해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관객에게는 자유로운 콘텐츠 접근의 기회를 주고, 한국영화산업에게는 작은 숨통을 틔워주는 건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