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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무서웠고, 부끄러웠고, 그러자 오기가 생겼다
김혜리 2012-12-14

<26년>에 투자한 음악인 이승환

Profile

1989 1집 ≪B.C.603≫으로 데뷔 1991 2집 ≪Always≫ 1993 3집 ≪My Story≫ 1994 더 클래식 제작 1995 4집 ≪Human≫ 1997 5집 ≪Cycle≫ 1999 6집 ≪The War in Life≫ 라이브앨범 ≪무적전설≫ 2001 7집 ≪Egg≫ 2003 한국 백혈병 어린이 재단 명예홍보대사 2004 8집 ≪Karma≫ 2005 라이브앨범 ≪반란≫ 2006 9집 ≪Hwantastic≫ 2007 미니앨범 ≪말랑≫ 2009 20주년 기념 앨범 ≪환타스틱 프렌즈≫ 발매 2010 10집 ≪Dreamizer≫

2012년 3월31일. 전날 밤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의 마지막 녹화와 뒤풀이를 마치고 느지막이 잠들었던 음악인 이승환(송파구 방이동)씨는 부은 눈꺼풀을 간신히 치켜들고 여느 때처럼 포털 연예기사를 훑다가 영화 <26년>이 제작 난항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의 마우스는 곧장 웹툰 <26년>으로 내달렸고 만우절인 이튿날 원작자인 만화가 강풀(강동구 성내동)씨는 “나 이승환인데요”로 시작하는 문자를 받았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답게 강풀 작가는 강한 의혹을 표했고, 공익근무 시절 이승환의 기획사 건너편 편의점에서 밤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침 6시에 조간을 배달한 경험을 살려 회사 주변 지형지물 묘사로 본인임을 인증할 것을 요구했다. 이 동네 미담의 결말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강풀 작가는 이승환을 “<26년>의 상징적 메인 투자자”라고 표현한다. 직접 5억원을 투자하기도 했지만 이 23년차 음악인의 기꺼운 승선은 여러 개인과 회사가 <26년>에 대한 망설임을 접고 투자자로 합류하도록 독려했기 때문이다. <26년>을 관람한 국민이 100만명이 넘은 날 밤, 이승환의 기획사 드림팩토리를 찾았다. 이름대로 공장처럼 꾸며진 계단을 올라 들어선 방에는 마법사의 실크해트가 놓여 있었고 잠시 뒤 토끼 대신 이승환이 나타났다. 12월 말 부산과 서울에서 열리는 콘서트 <환니발> 준비에 분주한 이 공연의 신은 과연 한국 키덜트들의 북극성다웠다. 말간 외모와 어린 취향 때문만이 아니라 몇살이 되건 타협으로 모서리가 닳은 ‘어른들의 세계’에 편입되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러했다. 이승환은, 그의 동안(童顔)은 내처 부러워하면서도 내키는 일을 향해 직진하고 아니다 싶으면 단호히 고개를 젓는 청년다운 태도에 대해서는 “나잇값 못한다”고 혀를 차는 앞뒤 안 맞는 세상을 의아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 공연 수익금이 <26년>에 투자한 제작비와 관련있는 걸로 안다. =올 초 티켓판매처 인터파크에서 미리 돈을 받고 공연 수익으로 갚는 협상을 했다가 결렬됐다. 그러다 <26년> 투자를 결심한 뒤 요구 금액을 절반 아래로 낮추고 그쪽에서 원하는 조건을 모두 수용하는 대신 자금을 빨리 마련해달라고 다시 제안해 성사됐다. 결과적으로 인터파크 공연팀과 일하며 열의와 아이디어에 자극받고 정보력에 도움도 받았다. 인터파크는 6월에 영화투자가 공표되고 나서야 내가 돈을 빌린 이유를 알았다.

-당신에게도 무대가 무서운 적이 있었나. =언제나 두렵다. 그 때문에 대민성 과장증상(좌중 폭소) 아니, 과민성 대장증상도 있었다. 긴장을 해소하려고 무대에서 달리기 시작한 것이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그러다보니 마이크 스탠드도 휘두르게 되고 점점 진화했다. 이제는 안 뛰어도 안 무섭긴 하다. (웃음)

-강풀 작가 원작영화 <순정만화> 음악작업도 했는데 <26년>을 뒤늦게 보다니 의외다. =<일상다반사>랑 강풀단행본은 집에 네권쯤 있었다. 나이가 많다보니 주변에 “<26년> 재밌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주변? 윤상이 마흔다섯이고….(웃음)

-웹툰 <26년>을 읽고 바로 강풀 작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큰돈과 노력이 들어갈 일을 하루 만에 결정하는 경우가 평소에도 흔한가. =(망설임없이) 그렇다. 작은 회사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다보니 상담할 사람도 없다. 감(感)을 믿는 편이고, 5년 전쯤 ‘그 일’(이혼을 지칭)을 겪고 난 무렵부터 욕심도 없어졌다. 욕심이 줄어드니 주변의 다른 이도 살피게 되더라. 뭘 지키려들면 겁도 많아지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려는 이상한 생각들이 솟기 마련인데 그게 없으니 느끼는 대로 행동하게 됐다. 첫 케이스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였는데, 예정에 없다가 당일 집회 나가면 어찌어찌 한다는 뉴스를 보고 화가 나서 (윤)도현이한테 전화해 가도 되냐고 물어보고 나갔다. 제일 억울한 일은 내 나라, 우리 정부라고 믿었던 힘에 다치거나 죽임당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한편 내가 여태 사랑받고 90년대에는 돈도 벌었는데 이제 올바른 일에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잃는 정도면 괜찮은데 빚이 생겨 이후 삶을 부자유하게 한다면 문제 아닌가. =그 정도 리스크 관리는 한다. <26년>에 10억원을 투자했다고 보도됐는데 아니다.

-영화에 투자하는 동기는 이 작품을 꼭 영화로 보고 싶다는 바람이거나,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알리고 싶거나, 재미있어서 충분히 상업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인데. =두 번째와 세 번째다. 하나 보태자면 무서웠다. 내가 공포에 길들여졌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오기가 생겼다. 수년전에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공연과 언론노조 집회 무대에 오르고 나서 몇몇 일이 있었고 겁이 좀 났다. 그래서 3년 동안은 안 하기도 했다.

-정치적 성향이 명확하다기보다 불공정함을 못 참는 성격이라고 들었다. 당신이 불공정함과 공정함을 가르는 기준은.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은 일인데 (힘을 가진 자가) 억지를 부리면 그 프레임에 모두 갇히는 상황이 싫다. 그들이 생각하는 ‘무지몽매한’ 국민 중 내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가서 밴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사복경찰이 와서 이름을 대라고 했다. 이승환이라고 했더니 세번을 고압적으로 다시 물었다. 이승환을 모를 수는 있지만 못 들었을 리 없는 상황에서 세번씩 그러는 데에는 위압하려는 유치한 의도가 있었고 그럴수록 오기가 나는 게 당연하다. 서울시장 선거 때 투표하자고 홈페이지에 공지를 올렸다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회사에 찾아온 적도 있다. 이런 경험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반골로 만드는 것 같다.

-요즘 연예인이 사회적 발언을 꺼리는 이유는, 옛날처럼 직접적 보복 때문이라기보다 방송사가 ‘알아서 기어서’ 기회를 박탈당한다거나 엔터테이너가 가르치려든다는 이미지가 끼칠 손해 때문인데. =일단 나는 방송, 언론과 어차피 별 상관없이 지내서 손해를 입을 게 별로 없고 걱정거리는 관에서 관리하는 공연장 대관문제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그런 일은 없었고 나는 자선공연을 하건 뭘 하건 재미없는 방식은 안된다는 입장이라 <26년> 참여도 그런 맥락으로 받아들여질 거라 믿었다.

-사담으로라도 제작진을 만난 자리에서 “적어도 영화가 이러저러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면 “이랬으면 좋겠다”고 개인적 희망을 피력한 부분이 있는지. =딱 한 가지 시나리오에 너무 잔인한 장면이 있어서 고어물 같다고 했더니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할 거라고 하셨다. 캐릭터 사업도 해봤지만,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음악과 공연이지 그 밖에는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단, 영화음악은 관여하고 싶었다. 주제가로 고른 <>은 원곡 뮤직비디오의 테마도 반전(反戰)이었고 가사가 던지는 미묘함이 있어 택했다. 곡 자체도 훌륭한데 널리 사랑받지 못해서 다시 세상에 내놓고 싶기도 했다. 사실 <26년>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서정적이길 바랐는데 개인적으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완성된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대목은. =심미진(한혜진)이 버스에서 총을 들고 나오는 장면이다.

-얼리어답터이고 피겨 수집가라는 점이 잘 알려져 있는데 취미 중에 코믹스나 애니메이션 보기는 포함되지 않나. =나에 대한 오해 중 하나인데 일본 만화도 안 보고 피겨도 캐릭터가 유래한 텍스트와 무관하게오로지 피겨 자체의 디자인적 측면과 정교함에 끌린다. 재테크로 피겨를 모으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냥 보기만 할 뿐 애지중지 닦아주지도 않고 직사광선을 받으면 안되는 피겨들을 베란다에 진열해놓는다. 햇빛이 들면 보기에 예뻐서. (웃음) 관절을 움직여 다른 자세를 취하게 하거나 옷을 갈아입히는 일도 없다.

-눈으로 즐기는 걸 좋아하나보다. 시각과 청각 중 한 가지를 포기하라면. =청각일 것 같다. 보는 걸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 TV도 많다. 음악이 인생의 1순위가 아닌 거다. 나는 여자랑 사랑하며 재밌게 살고 사람들이랑 노닥거리는 게 좋다. 그런데 현실에선 친구들이 나오라고 하면 “2주 뒤에 공연이라 안된다”고 거절한다. 공연이 내겐 최고의 명예라고 생각하니까 절제하는 거다. 결국 1년 중 7개월이 금주기간이니 과연 잘 사는 건지 모르겠다. (웃음)

-타 장르에 대한 관심이 음악 작업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있다면. =무대 미장센에 종종 응용한다. <미스타 리의 미스테리 투어> 무대장치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 나오는 마차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런가하면 <남편>이라는 노래는 일본영화 <비밀>을 보고,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디어 썬>은 사람에 관한 TV다큐멘터리를 보고 썼다.

-본인의 생활이 단조로우니 영화나 TV에서 스토리를 얻어 노래를 짓는 건가. =집 밖에 나가지 않아 삶이 플랫(flat)한데 그래서 행복하다. 불행하지 않으니까 행복한 거다. 요컨대 “행복하긴 한데 좀 심심하군” 하는 느낌? (웃음) 그러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승환의 절절한 발라드로부터는 멀어지게 된 것 같다. 사실 4집, 9집 때 팬들이 “이승환은 불행해지면 좋은 앨범 나온다”고 많이들 기대했고 실제로 <천일동안>이랑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가 나왔다. 요즘은 잘 살아서 팬들이 많이 떠난 것 같다. (폭소) 최근 곡들은 완벽하게 가볍고 밝다. 내가 진짜 내 상황을 음악으로 녹여내는 사람이긴 하구나 싶어서 다행스럽다.

-적어도 자기의 필터가 정직하다는 안도감인가. =그렇다. 그래서인지 최근엔 발라드를 전혀 안 쓴다. 스무곡쯤 썼는데 모두 그리 세지 않은 록 형태의 음악이고 들으면 웃길 정도로 파격적이다. 이제 앨범은 본전도 안되니 취미생활이라고 팬들한테도 이야기했지만, 만약 낸다면 그런 음악일거다. <26년>에 600만 관객이 들면 EP라도 내겠다는 약속은 했다. 뭐, 곡은 이미 있고 600만 들면 돈도 벌 테니 (손해본다 해도) 앨범 내도 된다. (웃음)

-거리에서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내 궁극적 목표는 예순, 일흔이 돼서도 록페스티벌에 서는 것이니 괜찮다. 내년에 일본 록페스티벌에 설 것 같다. 한국에서 발라드하던 사람이 쉰을 바라보며 그곳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일본 열도의 클럽을 한달간 순회하는 공연도 나란히 기획 중이다. 어차피 한국에선 일이 없을 테니까. (웃음) 아,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O.S.T 작업 중이다.

-<밤의 여왕>에 두 번째로 투자한다. 이후에도 영화에 참여할 계획이 있나. =아니다. 그러니 시나리오 그만 보내셨으면 한다. (웃음) 인디음악 제작에 더욱 치중할 거다. MYK라는 랩하면서 밴드하는 특이한 친구를 영입했다. 프로듀스도 스스로 하는 음악 잘하는 친구들만 뽑아 나는 제작 총지휘 역할 정도만 할 거다.

-방송에 나와서 음반 판매 등에 대해 자학에 가까운 멘트를 많이 한다. =배철수 형님한테 그래서 혼났다. (웃음) 뮤직비디오를 10억원 들여 찍었다는 둥 마냥 잘되고 있다는 식으로 대중음악계의 어려운 현실을 가리는 마케팅 풍토에 대한 나름의 반작용이기도 했다. “거짓말하며 사는 건 나답지 못해” 라는 생각이 늘 달라붙어 있다. 그런데 지금도 여자친구 생기면 거짓말할 거다. (좌중 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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