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후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개인적으로 ‘진보 아이돌’이라는 말도 안되는 별칭과 함께 등장했을 때부터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태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그녀를 좋아한 적이 없었지만 지난 12월4일 벌어진 1차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이정희 후보의 활약은 눈부셨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후보에 대한 그녀의 발언은 인신공격에 가까웠던 게 사실이지만 그런 ‘도발’ 속에서 토론회가 활기를 띤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후보들이 준비한 원고만 줄줄 읽어대는 지루하디지루한 토론회(하긴 박종선 후보를 보면 아닐 수도…)가 될 터였으니까. 내 생각에 무엇보다 이정희 후보의 가장 큰 공은 대통령 선거에 대한,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이어지는 2차, 3차 토론회는 1차 토론회에서 멍하니 있었던 박근혜 후보와 존재감을 상실했던 문재인 후보의 역공이 예상되니 대선판은 다시 뜨거워질 수 있을 것이다. 뻔한 얘기지만 정치와 선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중요한 건 후보가 아니라 유권자라는 말이다. 스스로 어떤 후보를 뽑을 것인지 원칙을 세워놓지 않으면 매스미디어의 온갖 책략 속에서 유권자는 길을 잃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스윙 보트>는 흥미로운 영화다. 선거를 다룬 수많은 영화들 속에서 이 영화는 드물게도 유권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주인공 버드(케빈 코스트너)는 정치에 아무 관심이 없지만 모범생인 딸의 성화로 유권자로 등록한다. 하지만 그는 선거날 회사에서 해고당해 술을 마시느라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다. 시민의식이 투철한 딸은 아버지 대신 몰래 대리투표를 하려 하지만 정전이 되는 바람에 투표용지가 투표기계에 걸리게 된다. 공교롭게도 대선 결과는 박빙이고 버드가 사는 뉴멕시코주의 결과에 따라, 그러니까 버드의 투표 결과에 따라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되는 상황을 맞는다. 선관위는 10일 뒤 버드가 재투표하도록 결정을 내리고 양당 후보는 버드가 사는 촌구석으로 내려와 단 한 사람을 위한 치열한 선거운동을 펼치게 된다.
미국 정치 시스템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는 어떤 본질을 담고 있다. 나의 한표가 중요하다는 사실과 함께 어떤 원칙으로 선거에 임할 것인가 말이다. 버드가 마지막 유권자로 결정되자 미국 전역의 수많은 사람들은 삶의 고난을 해결해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그는 자신만을 위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그들의 고통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를 묻고 그에 대한 답에 따라 한표를 행사하기로 한다.
‘스윙 보트’(swing vote)란 말 그대로 흔들리는 표심을 의미하며 따라서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표를 의미하는데, 그렇게 본다면 우리 모두 스윙 보터인 셈이다. 앞으로 5년, 아니 더 먼 미래를 결정하는 대선에서 부디 모두 자신의 소중한 한표를 멋지게 행사하시길 바란다. 여러분은 투표 전날에야 자신의 책임을 깨달은 버드보단 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