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나약하고 결정을 못하고 일을 저지르고 후회하는 주군이지만 “부끄러움을 안다”는 이유로 드라마 <신의>의 무사 최영은 공민왕에게 마음을 준다. 어우어. 그게 바로 내가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바거든. (최근 <책읽기 좋은날>을 펴낸 다혜리는 이해 못할지 모르겠으나, 언니는 노안에 난독증까지 겹치니 좋은 말씀과 즐거운 얘기라곤 드라마를 통해서 얻는단다. 남자 없고 새끼 없는 너는, 노국공주 말투로, 계속 책을 읽으라. 근데 다혜리는 남자가 없어 책을 읽을까, 책을 읽어 남자가 없을까. 그 얘기는 투비 컨티뉴….)
남자 있고 새끼 있어도 인간은 외롭다. 누군가가 내 삶에 끼어들었으면 싶다. 그래도 나는 내 밥벌이 가능하고 가스 사용량 정도는 알고 지내는 동네 친구들도 있으니, 투정일 거다. 진짜 아무도 삶에 끼어들지 않은 ‘무연사회’의 징후가 도처에 넘쳐난다. 홀로 죽어가는 고독사를 넘어 아무도 시신을 거두지 않는 무연사라니. 건물 꼭대기에서 몸을 날리는 청소년들도 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 낯선 여관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약을 먹는 어미들도 마찬가지다. 당사자들이 겪어온 외로움은 어떠했을까. 가난과 병마가 겹치면 그 정도는 더 심하다.
메가 이슈가 없는 대선판에 제안을 하나 드리자면, 추상적인 말씀 때려치우고 되도 않는 영입 경쟁 집어치우고 ‘외롭지 않게 해드리겠다’는 각오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일자리며 복지며 다 외롭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호통과 쇼맨십만 난무했던 국회 쌍용차 청문회를 보면서, 우리 사회는 정말 정리해고에 아무런 대책이 없다 싶은 게 공포에 가까운 외로움이 들었다. 가장이 일자리를 잃으면 노인과 아이가 힘들어지고, 그들을 돌보는 이가 가장 힘들어진다.
대선 투표권을 행사할 때마다 남편감을 뽑는 기분이 든다(마누라 말고). 그동안 꼭 남자 후보들만 나서서가 아니다. 여자라도 남편 삼고 싶은 이들이 있거든. 책임있는 가장을 만나고 싶달까. 가족을 외롭게 하지 않는 가장을 만나고 싶달까. 어쩌면 그 자신이 가장 외로울지 모르지만, 가장의 자리는 그런 것이고 대통령의 자리는 더욱 그러하다. 그걸 잘 못하는 이는 최소한 부끄러움이라도 알아야 한다(물론 지난 5년을 겪고나니 아무하고나 살림차려도 될 것 같긴 하다만, 어휴, 이런 마음이 나를 더 외롭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