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 관련 박 후보의 표현에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당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을 딱 잘라 부인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태도에서 당혹감을 넘어 두려움을 느낀다. 명백한 사법살인으로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을 두고 “(유신 시절의 판결을 옹호하듯) 판결이 두 가지”라거나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의 다른 증언”(이 증언은 60년대 1차 인혁당 사건과 관련된 것이다) 운운한 앞선 언급들도 무지일까 실수일까 싶던 참이었다. 당내 논의를 기반으로 한 지극히 일반적인 여론 수습성 대응에도 ‘발끈해’하는 걸 보니 앞선 언급들도 ‘어떤 신념’에 따른 것 같다.
박 후보가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2004년, ‘그는 아직 자기 정치를 한 적이 없다’고 여겼다. 그 뒤 그가 해온 ‘자기 정치’의 결과는 어떤가. 판사 출신 국회의원이 그의 심기를 헤아려 사법체계를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지경이다. 직언하는 사람도 없고 직언을 해도 간단없이 무시한 탓이다. 그는 “유신 없이는 공산당의 밥이 됐을지도 모른다”(1981년 일기)고 여긴다. 유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여기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주변인들의 전언이다. 인혁당과 관련한 ‘고집’에서 보이듯 그는 유신을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심지어 옳은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20대 끝자락의 신념을 30년 넘게 끌고 온 것이다. 강력한 권력의지를 바탕으로 일견 다양하게 취했던 표정과 제스처도 ‘유신’과 만나니 무용지물이다. 그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조차 아버지에 대한 푸닥거리로 보인다.
‘이명박 효과’ 때문인지 내심 ‘박근혜인들 왜 못 견디겠냐’고 여긴 적이 있었다. 해먹어도 우아하게 해먹지 않겠냐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일련의 태도와 인식을 보니 그가 대통령이 되면 큰일나겠다 싶다. 일반의 상식과 인식에서 동떨어진 채 주변의 충고도 국민 눈치도 살피지 않고 자기 신념만 지나치게 강한 이가 최고 지도자 자리에 앉으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더라. 무엇보다 그가 놓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대목은, 우리 사회는 더이상 70년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해원은 국민을 볼모로 하는 게 아니다. 영 원한다면 기념재단이사장이나 박물관장을 하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