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범죄 없는(특히 부동산업자들의 주장임) 동네에 산다고 하지만, 얼마 전 흉흉한 얘기가 돌았다.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가 혼자 하교하는 중에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발을 걸어 넘어지게 됐다. 무릎이 까졌는데 이 아저씨, 치료해주겠다며 자기 차로 가자고 막무가내 잡아당겼단다. 한갓진 아파트 담장과 큰길 사이 좁은 보행로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지나는 이도 없었다. 승강이 끝에 이 소녀, 엄마에게 배운 대로 상대의 급소를 발로 차올리고 도망쳤단다.
경비 아저씨가, 슈퍼 사장님이, 옆집 오빠가, 심지어 호신술을 가르쳐주는 사범님이 애를 예뻐라 해도 멈칫해지는 세상이다. 전국적으로 하루에 5~6건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가 발생한다. 신고된 것만 해도 이렇다. 지역과 계층을 가리지 않으며 면식범에 의한 것이 상당수다. 그렇다고 아이를 집에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며 언제까지 보호자가 따라다닐 수도 없다.
부쩍 ‘이벤트 정치’에 여념없는 대통령의 경찰청 방문 나흘 만에 ‘이벤트 대책’이 나왔으나, 결국 불심검문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평소에 얼마나 문제의식이 없었으면 ‘나흘이나’ 걸려 뽑아낸 대책이 이 따위일까). 한동안 위치추적 타령을 하더니 이제는 거세 타령이다. 아니나 다를까 유력 대선 후보는 사형제를 옹호하고, 의사 출신 국회의원은 물리적 거세를 강제하는 법안을 들고 나왔다. 아스트랄 보이 아톰의 세상처럼 사람과 폐로봇이 분리해서 살듯 시민과 범죄자(심지어 잠재적 범죄자)가 따로 살아야 할 판이다. 공포와 혐오만 조장하는 이런 대책은 아무런 예방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폭력을 성충동에 의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통제 불가능한 범죄로 여기게 만든다.
성폭력 범죄의 낮은 신고율, 기소율, 처벌률의 이유가 뭘까. 그 모든 ‘입증’ 책임을 피해자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친고죄를 빌미로 가해자가 합의를 종용한다거나 심지어 2차 협박을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공권력의 신속한 개입과 피해자 보호 및 치료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규 교과에는 성폭력 예방 및 인권교육이 포함돼 있지 않고, 방과 뒤 나 홀로 아이들은 100만명을 헤아린다. 이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종합적인’ 대책을 요구한다. 극단적 사후 처벌이나 호들갑스런 비상근무로 막을 수 있는 성폭력 범죄는 없다. 무능할수록 목소리만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