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재개발 현장에서 악명을 떨치던 철거용역업체 ‘적준’을 보는 듯하다. 서울 방배동 사무실에서 멀끔한 양복쟁이가 “우리는 허가받은 회사”임을 강조했다. 맞다. 일이 터지면 벌금 내고 회사 문 닫았다가 옆 사무실에 또 ‘허가받아’ 문 열고, 이사 대여섯명이 돌아가며 대표 자리를 맡았다. 반복된 불법으로 이 지방경찰청에서 허가받기 어려우면 저 지방경찰청 관할로 옮겨갔다. 철거대행을 내걸고 세입자들을 두드려 패던 그들이 이젠 시설보호를 내걸고 노조원들을 두드려 팬다. 더 교활하고 더 규모있게.
경기 안산의 자동차부품업체에 난입해 노조원 수십명을 다치게 한 ‘컨택터스’는 적준의 최신 버전이다. 수천명의 인원과 물대포, 헬기 등의 장비까지 보유한 자칭 ‘민간군사기업’으로 종합 컨설팅이라며 파견업무도 맡아 파업 노동자들의 자리에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로펌까지 껴서 법의 ‘보호’ 아래 폭력을 판다. 과거 적준이 형님 동생들을 웃통 벗기고 ‘작업’에 ‘동원’했다면 이들은 일 아쉬운 젊은이들을 까만 옷 입혀 ‘경호경비’에 ‘고용’한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일까. 당시에도 위법행위를 한 업체나 관련자들이 동종업을 신청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경비업법 개정 요구와 공권력의 방조/묵인에 대한 비난이 거셌으나, 십수년이 지나도록 법과 행정은 제자리이고 자본이 동원하는 ‘폭력’의 양태만 악랄해졌다. 눈앞에서 철거 세입자들이 두드려 맞아도 팔짱끼고 있던 그때 그 경찰은 이번에도 “살려달라”는 노조원의 전화를 수차례나 받고도 공장 안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돌아갔다. 철거민의 자식들이 노동자가 되는 동안 우리 사회는 대체 무엇이 바뀌었나.
동원된 폭력이나 고용된 폭력이 다를 바 없듯이, 현역의원이든 “한알의 밀알”이든 돈과 연줄로 영향력을 행세하는 것은 구태 정치의 표본이다. 지난 총선 새누리당 공천심사에서 ‘박심’을 대리했던 현기환 전 의원이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해 뒷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초선의원 신분으로 불출마를 선언하며(그제야 그의 존재를 안 국민이 절대 다수이나) 영남권 물갈이를 압박하는 등 자칭타칭 친박 핵심으로 활동해온 인사인지라 귀추가 주목된다. 그래봤자 ‘그분은 몰랐다’로 정리될 공산이 크지만, 폭력이든 구태든 거래 방식이 세련돼졌다면 작동 방식은 더 나빠진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