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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순간들(3)
주성철 2012-12-11

현장 B컷으로 돌아보는 2012년 우리가 사랑한 한국영화 13편

김기덕은 조물주?

<피에타>

<피에타>의 마지막 장면. 마치 머리가 잘려져 나간 듯 파묻혀 누워 있는 세 사람의 모습과 그를 내려다보는 김기덕 감독의 모습이 뭔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처럼 다가온다. 스크린으로 보았던 이미지와 시선의 완전한 역전, 김기덕 감독은 마치 조물주처럼 느껴진다. 그의 얘기에 따르면 “인간 내면의 용서와 구원으로 마음을 정화시키는 마지막 장면”이다. <피에타>로 베니스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은 각종 방송과 매체를 통해 ‘상영운동’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자신의 영화를 홍보했지만, 59만 관객을 동원해 결국 자신의 바람대로 이전 자신의 최고 흥행작인 <나쁜 남자>의 70만명을 넘어서진 못했다. 그사이 대종상은 객석의 그를 일어나게 만들었고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은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조민수)을 안겼다. 그로서는 ‘안간힘’이라 불러도 좋을 여러 활동, 그리고 어마어마한 상 앞에서 벌어진 결과를 두고 다시 한번 피로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피에타>는 극단적인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본주의의 중심인 돈에 의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불신과 증오와 살의가 어떻게 인간을 훼손하고 파괴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얘기는 다시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가 다시 예전의 속도감을 찾았다는 것이 그저 반갑다.

내가 늑대로 보이니?

<늑대소년>

“마크 표시해야 하니까 기다려!” 디지털 배우로 거듭나는 송중기의 얼굴에 마크가 그려진다. “지나친 괴물이나 야수의 모습보다는 최소한의 인간의 형상을 한 늑대소년을 만들고 싶었다”는 조성희 감독의 바람대로 그 역시 송중기의 얼굴에서 시작된다. 찡그리고 화내고 풀이 죽은 ‘늑대’의 모습은 ‘상남자’ 송중기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렇게 <늑대소년>은 송중기 신드롬이라고 할 만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여성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다. 비록 다른 철수는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지만, 극장가의 ‘철수앓이’는 계속된다. 개봉 26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아직 그 끝을 알 수 없는 조성희 감독의 <늑대소년>은 심지어 또 다른 엔딩을 담은 확장판을 다시 개봉한다. 삭제장면이나 미공개 엔딩이야 세상 그 어떤 영화라도 가지고 있겠지만, 기어이 다른 버전을 보고자 하는 그 욕망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기존 엔딩 신은 여전히 젊은 늑대소년 송중기와 이미 늙어버린 순이 역의 중견배우 이영란이 연기했다. 사진 속 박보영과 송중기의 훈훈한 모습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박보영과 송중기가 재회하는 또 다른 엔딩 신에 가슴이 설렐지도 모르겠다.

정지영의 두 얼굴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1985>

16년 만에 영화현장으로 돌아온 정지영 감독은 2012년 두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부러진 화살>은 350만 관객을 돌파했고 <남영동1985>는 지금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실화를 다룬 두 영화의 촬영현장에서 그가 보여주는 표정은 사뭇 다르다. 분노라는 감정 안에서 <부러진 화살>이 법정에서 김경호(안성기) 교수의 직설을 그대로 따라가는 쾌감이 컸다면, <남영동1985>의 고문실은 그야말로 무력하다. 세트에서 쭉 찍으니까 15회차에 끝낼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정지영 감독은 매일 그러한 무력감과 싸워야 했다. 고문을 당하고 행하는 배우들이 장면의 고통을 잊기 위해 억지로라도 에너지를 끌어내려고 장난도 치고 오버도 했다면, 정지영 감독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이경영과 박원상, 두 배우 모두 <부러진 화살> 때와는 달리 늘 침울했었다고 기억한다. 아마도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나누기 힘든 그 역사의 무게 앞에서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서였을 테다. <부러진 화살>의 활짝 웃는 김경호, <남영동1985>에서 끝내 마음을 열지 못하는 김정태, 그렇게 두 영화는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12월19일, 정지영 감독이 자신의 바람대로 <부러진 화살>의 마지막 장면처럼 활짝 웃을 수 있길.

웃으면 복이 와요

<도둑들>

“영화가 왜 한 사람의 감정만 따라가야 하나?” 최동훈 감독이 올해 첫 번째 1천만 관객 영화인(마치 이런 일이 흔했다는 듯 첫 번째, 두 번째라고 말하다니!) <도둑들>을 세 커플의 서로 다른 이야기로 구성한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한 커플이 지치면 또 다른 커플이 힘을 내고, 또 그 반대로 전진하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1급 오락영화’라는 표현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그의 지론은 현장이 즐거워야 영화가 즐거워진다는 것. 다이아몬드를 훔치러 가는 이정재, 김혜수, 이신제가 귀여운 분장으로 카메라 앞에 서고, 김윤석이 3시간에 걸쳐 노인 분장을 하며, 전지현은 5층 높이 건물에서 줄타기 연습에 열심이다. 얼굴을 맞댄 임달화와 김수현도 세대를 초월한 우정으로 가까워졌다. 사적인 친밀도는 결국 스크린의 친밀도로 이어진다. “떨어질 땐 이렇게 떨어져주세요”라며 전지현에게 시범을 보이는 최동훈 감독은 늘 배우들의 에너지를 신나게 북돋우는 사람이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에서 보여준 배우들의 호흡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다. ‘케이퍼 필름’이라는 자신의 제작사는 이제 막 창립작을 내놓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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