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 결과 발표는 한마디로 ‘우리 무능했어요2’이다. 일심으로 충성을 받던 VIP는 충성만 받고 보고는 안 받았다는 것이고, 청와대에서 입막음용으로 나온 돈의 출처도 돌아가신 장인이 주셨다거나(그것도 관봉으로!), 십시일반 모은 돈이란다. 장진수 전 주무관이 청와대의 지시로 불법사찰의 증거(하드디스크)를 인멸했다고 총리실 중앙징계위에서 밝힌 게 지난해 1월인데(이미 다른 깃털들과 함께 법적 처벌까지 받은 상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현 법무장관은 이 사실을 모르고 계셨고 올 3월 장 전 주무관이 언론에 폭로하고 나서야 알았단다. 장관이 서면으로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거란다. 1차 수사의 은폐/축소에 이어 이번 2차 수사는 좀더 다양하게 은폐/축소됐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겠다. 발표 내용도 노골적이다. 언제 어떻게 무엇을 사찰했는지는 없고 왜 불법이 아닌지만 구구절절이다. 왜 사찰 내용이 없냐면 “지원관실 팀원들이 모른다더라”다. 이쯤되면 거의 ‘우리 계속 무능하게 해주세요’다. 권재진 장관이 민정수석에서 법무장관으로 영전된 이유를 가늠하게 해줬다는 게 이번 수사의 유일한 성과랄까.
사실 이렇게 비아냥대고 있는 나도 ‘국가관’ 뚜렷한 국민인지라 맘이 편치만은 않다. 선출된 권력이 보인 ‘탐’욕과 ‘탐’식과 염‘탐’까지 ‘탐’자 시리즈의 밑자락은 유권자인 국민이 깔아준 거니까. 그런 권력을 수사하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받아쓰기식 수사는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급한 불은 끈 VIP께서는 대변인을 통해 “국민께 송구”,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이라는 내용의 달랑 두 문장짜리 서면 브리핑만 내놓았다. 같은 날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의 ‘의도된 무능’을 보여준 또 다른 사건인) 내곡동 사저 터 수사 결과에 대한 비판을 두고는 “그게 바로 (기성)정치”라고 고고한 학자처럼 말씀하시기도 했다. 이쯤되면 가히 무아지경이다. 무능에 무책임에 무아지경까지 3무다. 앞서 3탐을 더해 더블 그랜드슬램 달성.
헌 권력이 우겨가며 깃털과 꼬리만 자르는 가운데 새 권력을 노리는 이들도 이런 ‘우김 받아쓰기’에 안도하는 눈치가 역력한 걸 보니(자기들로선 당장 아쉬울 게 없다 이거지), 혹시나 권력을 갖게 될 때를 대비해 필히 동물 프로그램을 시청할 것을 권하고 싶다. 개는 어떨 때 주인을 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