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을, <뉴욕타임스>는 새로 시작하는 TV시리즈들을 일괄적으로 훑는 지면에 ‘버자이너의 시즌’(Season of Vagina)이라고 표제를 달았다. <뉴걸>의 리즈 메리웨더, <업 올 나이트>의 에밀리 스파이비, <서버가토리>의 에밀리 카프넥, <두 여자의 위험한 동거>의 나나치카 칸, <휘트니>와 <투 브로크 걸스>의 휘트니 커밍스까지 새 TV시리즈의 크리에이터 중 여성의 비율이 현저히 높다는 걸 그렇게 표현한 거다. 이 다섯편의 공통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다섯편 모두 시트콤이며 20~30대 젊은 여성 관객층을 겨냥한다는 것까지 같았다. 게다가 언급된 모든 시리즈가 2012년에 시즌2로 돌아오면서 2011년은 미국 TV에 신세대 여성파워를 알리는 분수령이 되었다. 이중 유일하게 자신의 쇼에서 타이틀롤까지 책임지는 휘트니 커밍스는 티나 페이, 에이미 폴러의 뒤를 잇는 코미디언 출신의 여성 크리에이터다. 커밍스는 스탠드업 코미디, TV시리즈, 토크쇼, 코미디 투어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속된 말로, 휘트니 커밍스를 ‘스캔’한 결과는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여성 코미디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과는 거리가 멀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지역방송국의 기자로 일했으며 모델로 활동한 경력을 가진 훤칠한 키와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의 소유자다. 큰 목소리, 커다란 입, 에두르지 않는 직설화법으로 “예쁜데 남자처럼 말하는 여자”라고 평가받는 것도 외모와 상관없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커밍스와 <투 브로크 걸스>에서 크리에이터 타이틀을 나누어 가진 <섹스&시티>의 마이클 패트릭 킹은 “코미디언의 재능은 성으로 구분될 수 없다. 커밍스의 외모는 재능을 거들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굳이 따지자면 커밍스는 티나 페이나 에이미 폴러보다는 사라 실버먼의 전철을 밟았다.
그렇기에 <휘트니>는 티나 페이의 <30록>이나 에이미 폴러의 <파크 앤드 레크리에이션스>와는 애초부터 다른 길을 걷는다. 페이와 폴러의 코미디가 주인공 캐릭터를 전문직에 종사하고 매번 연애에 실패하는 괴짜 노처녀로 설정함으로써 웃음을 만들었다면, <휘트니>의 웃음 포인트는 캐릭터보다는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보기 쉬운 말장난이나 에피소드를 통해 꼬집는 관계와 결혼에 대한 냉소다. <휘트니>의 주인공 휘트니(휘트니 커밍스)는 프리랜스 사진가지만 건어물녀도 괴짜도 아니다. 3년간 동거한 훈훈한 남친 알렉스(크리스 델리아)가 곁에 있고 가끔 티격태격하긴 해도 둘은 행복한 커플이다. 2011년 첫 시즌을 선보일 때만 해도 알렉스와 휘트니는 “헤어지지 않기 위해 결혼하지 않겠다”는 커플이었지만, 첫 시즌 파이널에서 알렉스는 휘트니에게 청혼했고, 시즌2 첫회에서 둘은 부부가 되었다. 결혼식은 물론이고 혼인신고도 없이 “오늘부터 우린 부부야”라며 신혼을 시작하는 둘을 보고 있자니, 사회의 강요나 제도를 따르지 않는 관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커밍스의 주제가 시즌2에서 좀더 공고해진 느낌이다.
“어떤 관계도 사회적인 구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휘트니>와 <투 브로크 걸스> 모두에 불우한 과거를 가진 냉소적인 캐릭터를 배치한 휘트니 커밍스는 실제로 5살에 첫 이혼을 목격했고 15살이 되기까지 그의 부모는 모두 3번 이혼했다. 커밍스가 품은 결혼제도에 대한 불신은 결코 작을 수 없었다. <휘트니> 속 신혼의 앞날이 궁금한 건 그래서다. 시즌1과 시즌2 사이의 급격한 변화가 시청률에 대한 의식이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커밍스는 <휘트니>를 통해 치유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그 치유가 웃음과 함께라면 나쁠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