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디어 아티스트 전준호와 문경원은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전시회인 카셀도큐멘타에서 건축가, 디자인 그룹, 과학자 같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종말 이후의 세계를 그린 단편영화 <세상의 저편>과 설치물 작업을 공개했다. <미지에서 온 소식>은 바로 그 작업을 확장한 인쇄물이다. 이 책은 영문으로 먼저 출간되어 카셀도큐멘타에서 첫선을 보였으며 한국어판에는 <세상의 저편> 후속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비현현>이 추가로 수록(컬러 인쇄물을 한 시퀀스씩 넘겨볼 수 있게)되었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에 대한 고민이 여기 있고, 문학, 과학, 인문, 종교 등으로 질문이 이어진다. 그 질문은 죽음, 끝 혹은 초월에 대한 호기심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기다.
일본의 건축가 도요 이토에게(그리고 이 책의 많은 이들에게) 이 프로젝트는 다름아닌 후쿠시마로부터 시작한다. “미래를 위한 마을은 이곳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마을의 항공사진이 나란히 놓이고 생명의 이미지가 넘치는(거의 천국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축제, 산책로, 어린이공원의 스케치가 등장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근대 이후, 건축을 짓는 사람과 거기에서 사는 사람들 사이에 괴리가 생겨났다. 하지만 원래 집을 짓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에 거리는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그리고 이창동 감독 인터뷰에 시선이 멈춘다. 그는 종말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 되레 질문하는 것으로 말문을 연다. 그에게 예술이란 해명할 수 없는 것을 질문하고 거기서 뭔가를 찾는 작업이다. 서구식 합리주의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무엇에든 해명을 요구하는 태도가 생겨났고, 그런 태도야말로 예술의 본질을 죽이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 ‘창조’하게 하는가. 새로움은 어디서 태어나는가. 이창동 감독의 인터뷰와 같은 맥락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이탈리아 시인 안드레아 잔조토의 인터뷰다. “어휘들을 가지고 감지할 수 있는 침묵에, 그 맹렬한 역사적 현실, 그 불에 데인 자국 속으로 가능한 한 가까이 가는 문제.” 거의 모든 예술과 삶의 형태에서 종말 혹은 파국을 근심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시대에 꽤 근사한 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