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린이날 조부모에게 받은 용돈을 주워(음… 업계 용어로는 훔쳐) 프라이드 치킨을 시켜먹었다(몸에 좋지 않으니 너 유치원 가고 없을 때 엄마 혼자 먹은 거야). 가정의 달, 가정을 지키는 나에게 이 정도 선물은 괜찮겠지, 우물거리며 배달온 씨네리를 펼쳤더니 효리씨의 ‘채식사랑’ 글이…. 헉, 닭다리 집을 때 내가 어떤 엄마일까를 살짝 생각했을 뿐 어떤 지구인일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역시나 오랜, 풀리지 않은 고민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왜 내 몸은(정확히 입은) 내 의식을 이렇게 배반할까. 쩝쩝.
유치원 다녀온 아이가 친구에게 볼일이 있다기에 친구가 가 있는 영어학원에 들렀다가 가슴이 철렁했다. 한 동네에서 줄곧 봐온 아이였는데,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일곱살짜리가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까 싶게 컴컴하고 구겨진 얼굴이었다. 저런 얼굴로 두 시간을 앉아 있는 건가. 할 수만 있다면 그길로 그 아이의 손을 끌고 나오고 싶었다. 우리는 대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직 전전두엽도 다 여물지 않은 15~24살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2012년 청소년 통계). 15~19살 10명 중 1명꼴로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데, 가장 큰 이유는 ‘성적 및 진학 문제’(53.4%)란다. 학부모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도 아이들 학업성취와 그와 연관된 (경제력을 포함한) 압박이다. 과한 육아, 과한 교육, 과한 성취…, 제 깜냥을 넘어서는 그것은 부모를 늙게 하고 아이도 늙게 한다. 의식이 몸을 배반한다. 수명과 별도로 이미 우리의 의식은 심각한 ‘노령사회’에 들어가 있다. 모두가 지치고 잘못됐다 여기는데, 바뀌지 않는다. 늙은 부모는 아이의 앞날을 겁내고, 늙은 아이는 놀 줄을 모른다.
일찍이 학습 노출을 많이 받은 아이가 일정시기 학습(습득) 능력을 높게 보이는 것은 ‘영재성’이 아니라 ‘인과관계’일 뿐이다. 내 아이의 ‘가능성’을 키워준다며 가정의 달 5월에도 불철주야 사교육에 매진하는 부모들에게 한마디. 그냥 던져놔도 잘하는 게 영재거든?
그나저나 할 만한데 안 하는 건? 때가 아니거나, 때가 지났거나. (듣고 있나요. 박 위원장. 총선 지나고 한달이 넘도록 언론사 동시파업에 무반응인 건 아직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8개월짜리 대통령’으로 만족하기 때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