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광범위한 부정이 보고된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며, 나 홀로 ‘멘붕’이다. 이른바 ‘건축학개론’ 세대의 손위 동서뻘인 내 친구들은 먹고사느라 바쁜데, 다들 크게 놀라지는 않는 것 같다. 바빠서가 아니라 겪어봐서. 오랜만의 문자질에 의견은 이렇게 모아졌다. 1. 한번은 크게 치렀어야 할 일. 이번에는 제대로 다 까야 한다. 2. 유시민은 참으로 박복하다. 밧뜨, 이번에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정치생명이 걸렸다(아, 유 오빠의 정치생명은 대체 몇개일까). 3. 문제가 된 비례대표들은 사퇴해야 한다.
나와 내 친구들은 지난 십수년 민주노동당 안팎 ‘용자’ 몇명에게 푼돈이나마 모아주는 방식으로 마음의 빚을 갚아왔다. 그들이 제도 정치에 뛰어드는 모습을 우려 반 기대 반으로 지켜보았다. 당이 쪼개질 때도 이해했고 일부(만) 다시 합쳐질 때도 이해했다. 세월도 지났으니 (민주노동당 이전부터의) 분파 패권주의자들도 정신 차렸겠지 믿었다.
당내에서는 어떤 영향력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국민의 대표라는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 안정권에 든 인사가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낯설었던 것도 그 한 이유였나 싶다. 부정/부실 선거는 ‘역량의 한계’ 이전에 몸에 밴 ‘패거리 행태’의 결과이다. 특정인을 밀어올리려다 벌어진 일로 추정된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에 대한 ‘자아비판’은 그동안 쌔고 쌨다. 문제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거다. 어느 틈에 ‘목적’조차 변질된 건 아닐까.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혹은 ‘내 사람’이 나서는 게 아니라, ‘내가’ 혹은 ‘내 사람’이 나서기 위해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이 도취를 넘어 도착을 부른 거다. 그에 따른 ‘헌신’이란, 색깔만 달리한 이익과 영달에 불과하다. 누구든 무엇이든 절대적으로 옳을 순 없다. 특히 그것이 과학도, 운동도 아닌, 정치의 영역이라면.
밤새 술 퍼마시고 다음날 널브러져도 되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와 처지와 책임이 바뀌었는데도 계속 그러면 주변에 상처와 짐이 된다. 오죽하면 아플 수도 없는 나이를 제목으로 단 책까지 나왔을까. 이번 조사 발표를 두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맞서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어쩌면 우리가 ‘진보’라는 이름으로 ‘괴물’을 키운 건 아닌지 등덜미가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