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가 그렸지? 지난 2011년 완결된 다음 웹툰 <인터뷰>를 보고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루드비코’란 이름을 검색한 독자가 틀림없이 많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국적인 그림체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매혹적인 이야기. <인터뷰>는 한국의 웹툰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독보적인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감독 데이비드 린치를 꼭 빼닮은 소설가가 주인공이다. 그는 출세작 <주홍색 스카프>를 내놓은 뒤 슬럼프에 빠져 있다. 몰려드는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해온 작가는 그의 미발표작 <헝가리 사진사>의 존재를 알고 있는 단 한명의 기자와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동안 솔직한 평가에 목말라 있던 소설가는, 인터뷰는 집어치우고 신작 얘기나 하자며 기자를 붙들어매고 세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며 이들의 대화는 점점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흐른다.
“이 작품을 제대로 완성해내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는 루드비코 작가의 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대학에서 만화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그는 2년 전 졸업작품을 준비할 겸, 작가로서의 진정한 첫 작품을 준비할 겸, “뭔가 하나는 이뤄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우연이 중심이 될 것. 신선함이 가장 최우선일 것. 이야기의 밀도가 두터울 것”이라는 세개의 원칙을 정한 이후 그는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3개월 동안 극한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였다. 자신이 정한 원칙에 부응하지 못한다 싶으면 가차없이 이야기를 쳐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얻어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완성작이다.
<씨네21> 독자라면 <인터뷰>의 연출 방식이 어쩐지 영화의 그것을 닮았다는 점을 금세 찾아낼 것이다. 극단적인 클로즈업, 등장인물이 격투를 벌일 때의 운동감을 표현하는 루드비코 작가의 방식은 확실히 만화보다 영화의 특성에 가깝다. 어린 시절, 비디오 가게를 하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시네필로 자라났다는 루드비코 작가는 “내 작품의 가장 큰 원천은 영화”라고 말할 정도로 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다. <인터뷰>에 영향을 미친 영화를 묻자 “존경하는 감독 데이비드 린치”를 소설가의 롤모델로 삼았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의 정서”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의 구성”, “샘 페킨파와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를 돌려보며” 액션장면을 구상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루드비코’라는 필명조차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오렌지>에 등장하는 정신요법이 아닌가. <인터뷰>가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해외의 거장 감독들에게 깊은 영향을 받은, 루드비코 작가의 예술적 뿌리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루드비코 작가는 다음 만화속세상의 신작 연재물 <루드비코의 만화영화>를 통해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음침한 표정의 분홍 토끼를 분신삼아 작가 자신의 일상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인데, 이 웹툰만 보고서는 ‘<인터뷰>의 작가’ 루드비코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건축학개론>을 다시 돌아보며 학창 시절 짝사랑했던 여학생 앞에서 찌질하게 줄행랑쳤던 과거를 고백하는 남자라니! “스탠리 큐브릭 영화의 차가움과 건조함”이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작가에겐 누군가를 울리고 웃겨야 하는 일상툰의 연출이 더 큰 고역인 듯했다. 하지만 그는 한회 한회를 거치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나가는 중이다. “일상툰은 공감이 중요한데, 난 좀 다른 쪽으로 공감을 시켜보고 싶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갖고는 있지만 소심하고 찌질하게 비칠까봐 차마 말로 꺼내기 힘든 어떤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걸 끄집어내려면 1차적으로 주인공이자 작가인 나부터 굉장히 솔직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대한 풍부한 지식, 일상툰을 그려도 어딘가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지는 루드비코의 다크한 매력은 분명 웹툰 작가로서 차별화되는 개성이다. 진지한 극화로 돌아오기 전, 당분간은 일상툰의 소소함을 즐길 예정이라니 서둘러 음흉한 분홍 토끼의 엉뚱한 영화기행담을 순례해보시라.
명장면 무한반복의 힘
-최근 가장 주목하는 웹툰은. =윤태호 작가의 <미생>과 네온비 작가의 <결혼해도 똑같네>. 네온비 작가님은 개그감이 최고인 것 같다. ‘여자 이말년’이라고 해야 할까. (웃음) <미생>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디테일을 구사하는 작품이다. 회사원에 대한 취재를 8개월이나 하셨다더라. 마치 작가가 회사원이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디테일 묘사에 정말 놀랐다.
-작업 이외의 시간에는 뭘 하나. =아무것도 안 하고 쉬려고 한다. 평소 웹툰을 연재할 때 밥 먹는 시간에도 계속 웹툰 생각만 하는 편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다. 아무 생각 없이 극장이나 쿡TV로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마감의 조력자(사람, 물건 다 포함). =마감이 힘들어지면, 그게 영화이든 책이든 만화책이든 간에 좋아하는 명장면을 다시 본다. 그 장면을 보았을 때의 감정들이 몰려오면서 “야, 너도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에너지를 얻게 된다. <인터뷰>를 연재하면서는 <왓치맨>을 참 많이 봤다. 오지 맨 디아스와 닥터 맨해튼의 결투가 벌어지는 마지막 장면. 정말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