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이 한창인 11월 중순, 남산 자락에 자리한 동국대학교 교정이 가장 아름답게 물드는 계절이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캠퍼스를 거니는 학생들의 발걸음에도 여유가 실려 있다. 도심에서 자연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점은 서울 시내 여느 대학들이 갖지 못한 동국대만의 자랑이다. 이곳이 수많은 한국 영화인, 연극인들의 모교가 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동국대 연극학부와 영화영상학과는 2006년까지는 한몸이었다가 현재는 예술대학 연극학부와 영상미디어대학 영화영상학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2013학년부터는 다시 같은 예술대학에 소속될 예정이다. 이름은 달라도 한지붕 아래에서 재능있는 영화인, 연극인 양성에 힘쓰고 있는 연극학부와 영화영상학과를 찾았다.
졸업 전까지 무려 10편 이상의 작품에 참여
학술관 지하 2층에 자리한 무용실에서는 신영섭 학부장의 지도 아래 ‘뮤지컬제작실기’ 발표 작품으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준비 중인 학생들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차가운 표정으로 빨래를 하고 있는 알돈자와 그녀에게 어떻게든 돈키호테의 편지를 전달해야만 하는 산초. 그들이 연습실 한가운데에서 미리 연습해온 것들을 펼쳐 보이는 가운데, 신영섭 학부장은 두 학생의 행동 하나하나에 “왜 그렇게 움직였는지”를 물었다. 선생님과의 문답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연기의 명분을 찾아나갔고, 어느덧 서툰 감정이 아닌 제대로 된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연기가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동국대 연극학부의 커리큘럼은 이런 실기수업들로 빼곡하다. 소리훈련, 신체훈련부터 연극제작실기, 뮤지컬제작실기, 극장실습까지, 학생들이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연기의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극장실습이나 제작실기 같은 중요 과목들은 4학기에 걸쳐 듣도록 되어 있다. 비슷한 과목을 이름만 달리해 가르치기보다 꼭 필요한 것들을 심화해서 가르치겠다는 뜻이다. 이 과정을 착실히 따른다면 졸업 전까지 무려 10편 이상의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 그렇게 학생들이 매 학기 피땀 흘려 준비한 작품들은 방학 때마다 2008년에 새로 지어진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관객과 만날 기회도 갖는다. 이렇듯 실기가 강조돼 있다고 해서 이론과정이 부실한 건 결코 아니다. 한국연극사나 희곡분석 같은 수업들이 마련돼 있지만, 신영섭 학부장은 무엇보다 “모든 실기수업이 이론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기수업의 기본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나 현상에 대해 코멘트하는 능력”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국대 연극학부는 또한 ‘융합’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국내 연기 관련 학과로는 드물게 학부제로 운영되고 있다. 학생들은 3학년 때까지 모든 수업을 공통으로 들어야 하고, 전공은 4학년 때 정한다. 이같은 시스템은 “액터와 싱어의 경계가 무너져가는 시대”에 학생들을 더 단단히 준비시키기 위함이다. 장르를 막론하고 먼저 연기예술 전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연극이든 영화든 뮤지컬이든 어디에 가서도 자기 기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연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최민식, 김수로, 유준상, 고현정 같은 배우들의 뒤를 이을 명석한 배우들이 꾸준히 배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학생들의 요청으로 이론교육 강화
한편 동국대 영화영상학과도 최근 이론교육을 다소 강화했다. 보통 영화과들이 갈수록 ‘실기’와 ‘시설’을 강조하는 추세를 떠올린다면 의아한 변화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의미있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학생들의 요구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최근 ‘동국 제2건학’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동국대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 서비스 제공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영화영상학과도 매 학기 한두 차례 학생간담회를 열고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게 모인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매년 다음 학년 커리큘럼이 재정비되는데, 올해는 중복되는 워크숍 과목들을 정리하고 필요한 이론수업들을 보충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팀 티칭에 심층 토론 수업으로 진행되는 영화분석세미나도 그 한 예다. 더불어 이론전공 트랙도 새로 마련됐다. 2013년 2월에는 논문심사에 통과한 첫 이론전공 졸업생들도 나온다. 졸업영화캡스톤디자인 등 팀 티칭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에도 이론 분야 교수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론적 바탕 위에 기술적 완성도가 나올 수 있도록 학생들을 돕기 위함이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가 이렇게 이론을 강조할 수 있는 까닭은 그만큼 실기교육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작품이 꾸준히 국내외 영화제에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의 교육과정은 크게 다섯 분야로 나뉜다. 기획/연출, 시나리오, 제작기술, 디지털 애니메이션, 영화 이론. 그중 기획/연출과 제작기술 분야 강좌에는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강사진이 포진해 있다. 최근에는 <블라인드>의 안상훈 감독이 강사로 다시 모교를 찾았다. 이들의 지도 아래 학생들은 2, 3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여 졸업 전까지 세 작품 이상 참여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매년 주목할 만한 재능들이 배출되고 있다. 안상훈 감독 외에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 <올드보이>의 정정훈 촬영감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김주호 감독, <해결사>의 권혁재 감독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이들도 많고, 2010년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에서 버터플라이상을 수상한 <괴물>의 류성규 감독이나 2010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단편부문 본선에 진출한 <소꿉놀이>의 최주용 감독, 17회 미국영화감독조합 학생영화상을 수상한 <리코더시험>의 김보라 감독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기쁜 소식을 전해오는 졸업생이나 재학생들도 적지 않다. 이만하면 그동안 수많은 영화인이 이곳을 거쳐간 이유도 알 것 같다. 동국대 연극학부와 영화영상학과가 앞으로도 지성을 겸비한 예술인의 산실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입시가이드: 정시전형
동국대학교 연극학부는 가군에서 이론전형으로 7명, 실기전형으로 16명을 모집한다. 이론전형은 수능 100%를 반영하고, 실기전형은 학생부 20%, 수능 40%, 실기 40%를 반영한다. 실기고사는 지정작품, 작품이해력, 즉흥연기, 특기를 각 25%씩 반영해서 채점한다. 영화영상학과는 가군에서 8명, 나군에서 7명을 모집한다. 가군은 수능 100%를 반영하고, 나군은 우선선발의 경우 수능 100%, 일반선발의 경우 학생부 30%, 수능 70%를 반영한다.
연기도 인문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연극학부 신영섭 학부장
-동국대 연극학부의 최고 장점이라면. =실기의 전문성이다. 교과목의 95% 이상이 실기과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 드물게 연극‘학부’라는 점. 점차 액터와 싱어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 시대가 오고 있다. ‘융합’의 필요성을 반영한 제도다.
-이론전형은 100% 수능으로만 뽑고 실기전형도 학생부와 수능을 모두 합해 60%나 반영한다. =실기비율을 높여놨더니 생각하는 능력은 없어도 테크닉만 있으면 된다고 오해들을 하더라. 하지만 연기라는 예술도 인문학을 바탕으로 하는 거다. 그리고 학과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들의 책임감, 성실성을 믿는 것도 있다. 재능만 보인다면 그런 학생들을 뽑아서 테크닉은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다는 뜻이다.
-실기전형 시험은 4과목으로 세분화해 있다. =우선 지정연기는 올해 체호프의 <세 자매>를 줬다. 4학년들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작품이지만 이해능력을 보겠다는 거다. 그다음은 대사 하나를 가지고 20분 동안 구성해서 보여줘야 하는 즉흥연기. 그외에 특기와 면접을 본다. 면접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조리있게 전달하는지를 본다.
현장인력을 강사로 채용한다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영화영상학과 문원립 교수
-커리큘럼이 많이 바뀌었는데. =이론전공이 생긴 게 제일 큰 변화다. 그동안 이론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없지는 않았는데, 학교에서 많이 뒷받침을 못해줬다. 그외에 이론수업들이 늘어난 건 지난해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 건데, 아직 2학기째지만, 반응이 좋은 편이다.
-졸업생들과의 네트워킹은 어떤 편인가. =최대한 현장인력을 강사로 채용하려고 한다. 그중에는 안상훈 감독 같은 졸업생들도 많다. 수업을 통해 인연이 돼서 연출부나 촬영부로 가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어떤 영화인을 키워내고자 하나. =선생님마다 조금씩 입장이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인문학적 깊이가 있는 영화인으로 키워내는 것이 목표다. 사고하는 힘을 가진 학생이 현장에 나가서도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