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12월16일까지 장소: 76스튜디오 극장 문의: 02-6012-2845
극단 골목길은 자타공인 대학로의 대표적인 배우 양성소로 꼽힌다. 박해일, 윤제문, 고수희 등은 이미 영화나 드라마의 간판스타로 이름을 날리고 있고, 황영희, 김영필, 엄효섭 역시 무대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뿐만 아니다. 배두나, 방은희, 김영민, 조재현, 고수에 이르기까지 골목길 무대에 한번 서보겠다며 ‘제발로’ 찾아온 배우들도 적지 않다.
이토록 화려한 진용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10년 전 극단 골목길의 창단은 그들의 무대만큼이나 소박했다. 무대가 없으면 트럭을 빌려 막을 올리고, 조명이 없으면 형광등을 켜놓고 공연하고, 등퇴장로가 없으면 배우들이 알아서 바닥에 숨었다가 일어나며 연극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그 뒤로 10년, 현재 골목길은 대학로를 대표하는 중견 극단으로 성장했다. <선착장에서> <경숙이, 경숙아버지> 등 내놓는 작품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연극계의 크고 작은 상들을 휩쓸었고, 박근형은 연극계에서 가장 바쁜 연출가로 손꼽힌다. 창단 멤버들 역시 이제는 소극장 무대에서 자주 만나기 어려운 배우들이 되었다.
그런 그들이 창단 10주년 기념 ‘난로가 있는 골목길’ 시리즈를 통해 다시 뭉쳤다. <쥐> <대대손손> <청춘예찬> 등 극단의 초기 대표작들을 차례로 무대에 올리면서, 10년 전 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 밥을 짓고 연극을 만들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윤제문, 엄효섭, 고수희 등도 골목길이란 이름 아래 오랜만에 모였다.
이중 첫 무대인 <쥐>는 살인과 식육이라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소재로 연극계에 큰 화제를 몰고 왔던 작품이다. 소재만 보면 끔찍하지만, 막상 연극 속 인물들은 유쾌하고 행복하며 우애 넘치는 가족으로 그려진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박근형은 서로의 살을 뜯어먹으면서도 아무런 고민이나 죄책감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다시 무대에 오른 <쥐>는 우리의 모습이 그때보다 나아지지 않았음을, 아니 더 끔찍하고 부조리해졌음을 새삼 실감하게 해준다.
가장 어둡고 그늘진 곳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무겁게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아주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흘러가는 무대. 하지만 그 속에는 시대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날카로운 ‘한방’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10년을 지나면서도 변하지 않은 극단 골목길의 뚝심이고 저력이다.